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변화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다. 나에게 그것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다. 나에게 자식이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아무리 기대에 못 미쳐도, 부모는 결국 자식의 성공을 바란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자식의 입장으로 한국에서 살 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더 잘 되길” 바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은 욕심이라기보다, 자식을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그런데 반대로 아이를 키우며 한 가지 더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부모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방향이 아이를 살리기도 하고, 상처 입히기도 한다.
오늘 행복이는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아이와 경기를 했다. 결과는 3대 1로 패배였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졌지만 충분히 잘했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위로이기도 했지만, ‘너는 이미 괜찮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행복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도한 얼굴로 웃었다. 패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그 순간만큼은 아이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만약 내가 게이라는 이유로, 여자 친구도 사귀어보고,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끝내 일반인 되지 않았을 때...
그때 부모와 가족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했을까?
“그래도 네가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과 “왜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을 끝내하지 못했느냐”라고 묻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간극이 있다. 나는 그래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부모, 아니 사람의 마음은 바뀌기 어렵다. 하지만 그 마음이 아이를 바꾸려는 방향을 향할지, 아니면 아이를 지켜보는 방향을 향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자식 혹은 사람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끝까지 옆에 서 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평생을 결정한다는 것도.
우리 주변 사람들을 너무 바꾸려고 하지 말자. 그건 사랑이 많아서라기보다, 불안이 많아서 생기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변해야 내가 편해질 것 같고, 상대가 달라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아서
우리는 종종 ‘이유 있는 조언(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그렇게 밀어붙인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잘 바뀌지 않아.
그리고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야.
우리 모두 이미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정과 이유가 숨어 있는 것뿐.
사랑은 누군가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견디고 함께 있어 주는 일에 더 가깝다.
그리고 변화는, 타인이 밀어붙일 때가 아니라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니 오늘은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을 그대로 두는 용기를 한 번쯤 선택해 보아도 괜찮을 것까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