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를 바라보는 다른 어른들의 시선

by Ding 맬번니언

처음으로 앤디와 행복이가 함께 슬립오버를 했다. 앤디는 행복이보다 한두 학년쯤 어린 아이다. 나이로만 보면 더 어리고, 보통이라면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을 법한데, 막상 함께 시간을 보내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앤디가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결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행복이의 친구들 대부분은 운동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좋아한다. 직접 뛰고, 공을 차고, 경쟁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이 그 아이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행복이와 많이 비슷하다.


그런데 앤디는 달랐다.


앤디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그의 아빠 닉이 떠올랐다. 앤디의 말투, 생각의 방향,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어디선가 본 듯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바라보며 어른을 떠올린다는 건, 그만큼 닮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닉은 언제나 차분한 사람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핵심을 알고,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판단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앤디의 대화 방식은 놀라울 만큼 그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부모를 보고, 배우고, 흡수하며 자란다는 사실을.


부모가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이에게는 더 큰 교과서가 된다.


“운동 좋아해?”라고 묻자, 앤디는 잠시 생각하더니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디서 해?”라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하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해요.”


그 대답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어린아이에게서 기대하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 뛰지 않아도, 땀을 흘리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마치 취향을 설명하는 어른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앤디는 자신의 장점을 소리치듯 드러내지 않았다. 힘을 과시하지도 않았고, 중심이 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자기 속도로 대화했고, 듣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깨달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것을.
어떤 아이는 몸으로,
어떤 아이는 말로,
어떤 아이는 관찰과 이해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행복이와 앤디는 달랐다. 하지만 그 다름은 누가 더 낫고 부족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선택한 언어가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아직은 잘 어울렸다.


슬립오버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앤디를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조금 넓어졌다. 아이들은 부모애게 영향을 받고 자라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었다.


내가 앤디를 바라보라는 시선처럼 행복이를 바라보는 다른 어른들의 시선이 갑자기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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