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가 태어나고 11년.

by Ding 맬번니언

행복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는 새로운 한국 게이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있기때문이다.그들과 가끔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고,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익숙한 루틴이 형성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고, 굳이 애써 사람을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행복이에게 집중하고 싶은것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내 세계 안에 머물렀다. 가족과 일, 그리고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지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한국 게이 두 사람을 만났다. 생각해 보니 거의 11년 만이었다. 행복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이었다.


한 사람은 나보다 15살 어린 동생이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했고,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호주로 건너온 케이스였다. 또 한 사람은 나보다 8살 어린 동생으로, 한국 회사의 주재원으로 이곳에 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스펙’으로만 보자면, 둘 다 충분히 잘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이력보다도 태도였다. 자기 이야기를 과시하지도, 불필요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서로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왔지만, 그 차이를 경쟁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처럼,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느꼈다. 아,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싫어했던 게 아니구나. 나는 그저 의미 없는 관계에 지쳤던 거였구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빠이기 전에, 누군가의 파트너이기 전에, 그냥 한 사람으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일찍 문을 닫아버렸던 건 아닐까.
가족을 지킨다는 이유로, 상처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까지 함께 닫아버린 건 아닐까.


오늘 만난 두 사람은 내 삶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자주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만남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으니까.


행복이가 태어나고 11년.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조금 잊고 살았다.
그리고 오늘, 아주 오랜만에 그 잊고 있던 나를 잠깐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꽤 좋은 날이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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