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은 지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장을 갔다. 그가 없는 동안 동생이 어머니 집에 머물면서 행복이 등교를 도와주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너무 고맙다.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느낀다.
사람은 이렇게 서로 기대고 도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언제나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늘 나는 하나를 새삼 깨달았다.
행복이가 약을 먹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될까 봐 내가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티븐의 동생이 행복이 등교를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약을 복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이유 없이 불편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았다.
행복이는 ADHD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필요해서 먹는 약이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다. 머리로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은 달랐다. ADHD가 아이를 판단하는 조건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이상한 기시감이 밀려왔다.
한국 가족들이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모르면 좋겠다고 바랐던 그 마음과 닮아 있었다. 나는 한때 그 마음 때문에 상처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똑같은 감정을 아이에게 품고 있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 안에는 분명히 그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게이로, 행복이는 ADHD를 가진 아이로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이름이 붙는다. 그래서 그런 거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세상은 늘 설명보다 먼저 단어를 붙인다. 그리고 나는 그 단어가 우리를 가두는 것이 싫다.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생각했다.
이 아이는 “ADHD인 아이”가 아니라 그냥 행복이다. 웃고, 화내고, 장난치고, 테니스를 좋아하고, 나를 귀찮게 하고, 나를 웃게 만드는 그냥 내 아들이다.
그리고 나는 “게이”가 아니라 그냥 나다. 행복이를 돌보고 치카를 돌보는 그냥 평범한 나다. 우리를 설명하는 단어는 많지만 그 어떤 단어도 우리를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외형을 보고 뚱땡이, 멸치등 사람을 판단하고 금수저, 흑수 저라고 판단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것이 결코 잘못된 행동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행복이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날을 바란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약점이나 치부를 문제시하고 판단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마 우리는 그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