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설날을 맞이한 지도 벌써 20년쯤 된 것 같다. 이제는 이곳에서 보내는 명절이 어색하지 않다. 한국의 공기와는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익숙해졌다. 명절이라는 것이 장소보다 사람이라는 걸 오래 살다 보니 알게 된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유독 특별했다. 애들레이드에 사는 동생 제이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문장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제이는 최근 몇 달을 한국에서 보냈다. 학교 문제 때문이었다. 실습을 마쳐야 했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실습에서 낙제를 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고, 그는 한국에서 기다리면서도 계속 버텨야 했다. 불확실한 시간은 사람을 가장 쉽게 지치게 만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력은 누구라도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그가 낙제를 받은 실습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화가 났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환경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그다음 이야기였다. 그는 그 시간을 견뎌냈다. 분노로 맞서지 않았고, 싸움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억울함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은 쉬운 반응이다. 하지만 감정을 삼키고, 상황을 말로 풀어내고, 도움을 구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선택이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성숙함에 가깝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3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상황에서 그렇게 차분하게 행동할 자신은 없을 것 같았다. 글 속에서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기 쉽지만, 현실에서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래서 더더욱 제이가 대단해 보였다.
사람은 말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그는 다시 애들레이드로 돌아간다. 나는 괜히 마음이 쓰인다. 이번에는 제발 실습에 통과했으면 좋겠다.
그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꼭 받았으면 좋겠다. 설날 저녁에 들은 이야기는 떡국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명절은 결국 가족의 시간을 확인하는 날이고, 오늘 나는 한 사람의 끈기와 태도를 기억하게 되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
그 문장이 오늘은 유난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