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가 캠프에서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첫 주말을 맞았다. 일요일, 우리는 약속대로 시아버지가 계신 곳을 찾았다. 수목장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묘지’가 아니라 그분의 나무를 방문한다.
날씨가 참 좋았다. 햇볕이 따뜻했고, 바람도 부드러웠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씨는 슬픔을 조금 덜어주는 느낌이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행복이도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랐다. 조용히 서서, 잠깐이라도 생각을 하고, 이 공간의 의미를 받아들이기를.
하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행복이는 행복이 답게 있었다. 아이답다. 자신의 기분이 먼저였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 주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했다. 아이에게 어른의 방식으로 느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조금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그 나무 옆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각자 방식대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유명한 곳이라 미리 예약을 했다. 그런데 한 직원이 우리를 기억해 주었다.
시아버지 나무를 방문하고 3번을 방문했는데 유일하게 그만 우리를 기억해 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고, 우리 가족을 알아봤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것이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우리를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돌아왔다.
나는 그가 우리를 기억해 주는 것처럼 행복이도 할아버지를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행복이는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느끼지 못한다고 단정해도 되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표현하지 않을 뿐,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로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느끼는 감정들을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조금 생각을 바꿨다. 기억하라고 강요하기보다 함께 같은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행복이가 지금을 떠올릴 때, 정확한 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렴풋하게라도 이 시간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