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의 어린이날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호주는 어린이날이 없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에 어린이날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내 생각에 호주 아이들은 매일이 어린이날이기 때문에 따로 어린이날이 필요 없는 것 같다.
한국아이들과 비교해 보아도 호주 아이들은 공부에 신경을 덜 쓰고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 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논다. 아이들 미래를 생각해서 부모님 입장에서는 별로 안 좋을 수 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담하는데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보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내 아들 행복이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좋은데 요즘 자꾸 행복이가 밉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고 문제가 커지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싫어서 미운 것이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어하면서도 감정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 문제가 아니고 자신의 문제인데 아빠는 이렇게 힘든데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하면서도 감정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월에 시작된 문제가 벌써 5월이다. 내가 아이와 내 문제를 동일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경험 부족에서오는 문제다.
행복이는 마냥 놀고 싶고 마냥 즐겁고 행복해한다. 그럼 되는 것 아니야 하면서도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속 시원하게 나를 지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이면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 상담소에 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도 한국어 학교 행복이 반에 행복이 단짝 친구 알피랑 신나게 놀고 있다. 참고로 알피도 행동이 꽤 거칠다. 행복이도 거칠게 노는 것을 좋아해서 둘이 죽이 잘 맞는다. 그런데 오늘 알피가 실수로 행복이를 다치게 했다. 행복이 얼굴에 상처가 났다. 얼굴에 상처를 보니 속상하다. 부모 마음이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 주로 내가 가해자 부모로서 사과를 하는 편이라서 알피 부모에게 사과받기는 또 처음이다. 내 마음이 아픈 것은 행복이 행동이다. 학교에서 행복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사과만 했지 행복이도 사과를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다. 행복이는 남자아이답게 조금만 한 상처에 울고 누구에게 고자질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행복이가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이가 어린아이는 울면 이기는 것 같다.
행복이가 요즘 학교 상황으로 주눅이 드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또 속상하다. 이런 행복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조금 더 많이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몇 달째 진전이 없어 나도 힘들어서 그렇게 못하고 있다. 벌써 몇 달째 지속되는 문제가 이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 행복이까지 밉기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처방 아닌 처방이 행복이에게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경험상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문제로 부모가 중심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를 위해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나처럼 된다. 자신이 아이 때문에 희생했다고 그것을 생각하고 아이를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데로 두고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것을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