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패션쇼 준비를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바사삭, 하나의 꿈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패션쇼 준비를 할 수가 없어 결국 MSFW관계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과했다. 그렇게나 기쁘게 준비하던 일을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고통조차 작게 느껴질 만큼 지금 나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맬번 스프링 패션 위크(MSFW)’은 호주에서 가장 큰 패션위크로 메이크업 컨설팅,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강연과 스타일 추천 위크샵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는데 디자이너라면 한번 꼭 참여하고 싶은 곳으로 나 또한 정말 참여하고 싶었다.
다른 하나의 꿈만은 지켜내고 싶다. 지켜낼 수 있을까? 가미 사건이 점점 더 커져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 갈수록 막막함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행복이(아이 태명)를 만날 날만을 상상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이대로 만나지도 못한 체, 행복이의 안전마저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게 내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베이비 가미 사건으로 인해 태국 대리모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태국 최고 군정 기관인 국가평화 질서 회의(NCPO)가 13일 의장인 ‘프라웃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상업적 대리모 출산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이 초안은 향후 상업적 대리 출산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태국에서 대리모를 허용해주었기에 동성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를 직접 가지기 어려운 전 세계 수많은 일반 부부들도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 아기 밀매 사건을 결정적인 계기로 태국 정부는 앞으로 대리모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해 이미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던 부모들 에게까지 대리모를 금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실낱같은 모든 기회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미 태국 내 모든 IVF 클리닉이 문을 닫았으며 태국 의사들이 감옥행에 처해지거나 엄청난 벌금을 물어내고 있었다. 이런 조치로 인해 대리모들이 동요하고 있고 몇몇 대리모가 낙태를 이미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문제로 태국 정부에서 호주 정부에 압력까지 가하고 있었고 우리는 행복이의 대리모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나 내가 선택했던 의사조차 행방이 묘연해져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제정신을 차리고 패션쇼를 준비할 수 있겠는가? 그저 숨만 쉬고, 바람인 듯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날 때마다 문제가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나 자신의 나약함만을 실감하고 있을 뿐이었다. 점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지기 시작했고, 한 시간을 자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일주일 전 들었던 행복이의 심장 소리가 환상처럼 내 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벌써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까?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일주일 전 태국에 가서 대리모를 만나, 즐겁게 밥을 먹고, 병원에 가 초음파 검사로 여기가 머리이고, 팔이고, 다리이고, 아주 잘 크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모든 것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무 행복해해서 삼신할머니가 우리 행복이를 점지해주지 않기로 하신 걸까? 나에게 벌을 주시는 걸까? 조금 덜 행복해하고 기뻐했다면 이런 일이 내게 생기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큰 것을 욕심내서 벌을 받는 걸까?’ 게이는 아빠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모든 절망의 끝은 나를 향한 자책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계속 이유를 되묻다 보니 모든 이유가 나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으나 마음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 은 가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호주 일반 부부의 의뢰로 대리모가 된 태국인 ‘파타리몬 찬부아‘에게서 쌍둥이가 태어나는데 태어난 두 아이 중 여자아이는 정상이었고, 남자아이는 장애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생물학적 부모인 호주 부부는 정상인 여자아이만을 데리고 호주로 가버렸기 때문에 남자아이 가미만이 남겨진 상태이다. 21세의 대리모 파타리몬 찬부아는 임신 중 태아 질환 검사에서 가미가 다운증후군에 걸린 것을 알고 낙태를 권유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선천적으로 심장과 폐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 가미를 돌보고 있다.
어제도 가미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인터뷰가 나왔는데 그들은 호주인 데이비드와 중국계 부인 웬디라는 일반 부부로 8년이나 자연 임신이 실패하면서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졌다. 그런데 그 호주인 아버지 데이비드가 과거 아동 성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리모 신청자들의 자격 논란까지 더해져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여론이 악화되고 있었다. 처음 가미를 돕고자 시작했던 모금 운동은 이제 가미의 치료, 양육비로 2억3000만원 정도가 모금되었다. 다행히 가미대리모 파타리몬 찬부아는 더 이상 돈 걱정 없이 가미를 키우며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미디어가 더 자극적인 관련 이슈에 초점을 맞춰 후속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미디어는 더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 가미 생물학적 부모의 아동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는 자격과 환경을 갖추었는지 더 논의되어야 마땅한 일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그 부부의 경우에만 초점을 맞춰 다른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까지 똑같은 취급을 받고 피해를 입는 것은 부당한 처우 아닐까? 우리처럼 아무런 잘못 없이 아이를 만날 수 없는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행복이를 만나 데려올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이제 행복이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까? 로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티븐도 나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행복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은 똑같았다. 그래서 다시 몸을 일으켜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놓았던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내가 먹고 힘을 내야 다시 행복이를 찾을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먹으며 태국 어딘가에서 아빠가 데리러 올 날을 행복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 입, 한 입 더 먹을 수 있었고, 어서 행복이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 시간이라도 자고 체력을 회복해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 하나 가눌 힘도 이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행복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또 할 수 있다니, 내 아이란 이렇게 힘을 주는 존재구나 하고 새삼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내 지인 중 태국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부탁해 내 대리모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대리모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가 책임질 것이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안심하고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소를 물어보고 직접 태국말로 손 편지를 쓰고, 맛있어할 만한 호주 과자를 챙겨 대리모 아이들 선물까지 챙겨 태국으로 택배를 보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녀를 안심시키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대리모도 나를 믿어주는 것 같아 그 점에 안심이 찾아 들어 너무나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나는 그녀가 고마웠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비록 그녀가 나에게 대리모를 해주고 내가 그녀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관계로 만났지만 그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대리모를 향한 시선은 아직 불편함이 많다. 그런 사실을 대리모들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처음 대리모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할 도덕적인 부분까지 고려해 선택한 것이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으로서 엄청나게 큰일이고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대리모 자신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는 대리모를 해야만 했고, 나는 그 상황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존중을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내 대리모가 되어준 그녀가 그런 자신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하기를 바랐다. 물론, 내 개인적인 입장을 고려할 때 대리모 문제 자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나는 대리모를 통해 행복이를 만난 고마움을 늘 가지고 있기에 세상의 대리모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관대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