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생일

2015년 6월 7일

by Ding 맬번니언

스티븐과 나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저 이삿짐. 방마다 한 가득이다.

볼 때마다 박스를 풀어 어서 하나라도 정리해버리고 싶은 나와 시간 날 때 천천히, 슬슬 해~ 라며 정말 느긋한 스티븐


오늘도 나는 정말 신경 쓰지 않고 그날그날 필요한 것만 꺼내 쓰고 있는 스티븐을 보며 또다시 정리해버리고 싶은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


'그래~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알렉스 생일이잖아~ 할 시간도 없어~'


오늘의 드레스코드 희색& 검정색(알렉스의 닉네임은 팬더이다.)을 맞추기 위해 옷 박스를 열어 행복이에게 흰색과 검정색 옷을 입힌 후 다시 박스 뚜껑을 닫아버렸다. 계속 박스 안을 보고 있으면 결국 저 박스를 정리해야만 알렉스 생일파티에 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파티장 도착!

톰 집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꽤 와 있어 북적북적했다. 다들 중국 사람이고 나만 한국출신이다. 파티에는 최근 친하려 지내려 하고 있는 얀의 가족도 보였다. 얀은 내가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도클랜드에 살고 있는데 만 40세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그녀는 중국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호주에 넘어와서 지금에 남편 러셀을 만났다. 러셀은 결혼을 4번을 했는데 얀이 4번째였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데 능력 있는 남자인가 보다. 러셀에게는 4명의 자식이 있었고 4명 모두 다른 엄마에게서 태어나 아빠는 같고 엄마가 다른 형제들이었다. 이런 복잡한 사연이 있어서인지 얀은 중국인임에도 모임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기에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에 쉽지 않은 면이 있었고 나 역시 다른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고는 싶어 했으나 그렇지 못하던 차에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얀과 친해지면서 그녀가 이야기해준 바로는 원래는 러셀이 부유했기 때문인지 한 때 전 부인 아이들이 모두 얀과 같이 러셀의 집에 살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얀은 전형적인 팥쥐 엄마처럼 행동해서 아이들을 전부 내쫓았고 이제 아무도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 이유는 18살이 넘어서 독립한다고 했던 스티븐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와 지금 브라이튼에 같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였다.


'스티븐 아이들은 아직 독립을 하지 않았다. '


나에게 몇 년만 참으면 당연히 독립할 것이라 했던 일이 브라이튼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스티븐이 독단적으로 내 의사를 무시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은 아이들과 당분간 더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해 어떤지 내게 분명히 물어봤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계속 같이 사는 것은 어렵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되었으니 일자리를 찾고 돈이 모아질 때까지는 함께 지내도 좋겠다고 말했다. 행복이를 위해 태국까지 와서 축하해주고 지금도 행복이를 많이 사랑해주는 아이들을 얀처럼 팥쥐 엄마처럼 굴어 내쫒고 싶지는 않았다. 그 동안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많은 것들을 맞춰 나가야 했고 이해해야 했지만 그 시간만큼 쌓인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행복이를 돌보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고는 해도 만18살(한국나이20) 아이들이 어떻게 갓난아이를 돌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느 훌륭한 어머니들처럼 내 자식처럼 사랑하기에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낙 착한 아이들이기에 감정적으로 가족이라 느낄 수 있는 만큼의 따뜻함은 느낄 수 있었고 지난 몇 년을 한 가족으로 살며 우리가 쌓은 것들을 물거품처럼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행복이를 친동생처럼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행복이에게 또 다른 형제가 생기지는 않아도 함께 산 기억이 있는 가족이 나 말고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도 스티븐과 내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 후 행복이가 자기 혼자 부모와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을 감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장례식장에서 혼자 울고 있다면 옆에 다가와 친형제처럼 곁을 지켜주고, 함께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부모가 아무리 큰 사랑을 주어도 결국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게이라는 것을 알고 어떤 순간엔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나 같은 게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더 절망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이가 태어난 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건강하게 지켜줘야 한다는 어떤...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를 나눈 친형제는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가족이자 형제라고 생각해주는 이 아이들이 행복이 옆에 있어 준다면 행복이도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진짜 가족이란 그런 것 아닐까? 비단 피를 나눈 형제와 부모뿐만 아니라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같은 가족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이. 스티븐의 아이들과 행복이는 바로 그런 가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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