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네

2015년 6월 5일

by Ding 맬번니언

드디어 이삿날. 오늘 오랫동안 정든 도클랜드 펜트하우스를 떠나 맬번의 브라이튼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 브라이튼은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동네이다. 조용하고 안전하며 주변에 좋은 학교들(사립, 공립)이 많이 있고 바닷가와 가까워서 살기도 좋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동네 중 한 곳이다. 늘 보수 정당이 선거에 압도적으로 이긴다. 서울에 강남구 청담동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톱스타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 같은 곳이다. 브라이튼에는 Nepean Highway가 있어서 시티까지 20분 정도 걸리고 기차도 시티에서 sandringham을 타면 다른 트레인 라인처럼 다소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을 지나가지 않아도 되는 Sandringham 라인이라 그 점이 특히 좋은 점으로 꼽힌다.

호주에서 아이가 있는 대부분의 가정은 정원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안전에 대도시가 위험 요소가 많고 조용하고 넓은 정원이 있으면 야외 활동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등 아이의 정서 안정에 좋은 일들을 하기 적합하기 때문인 듯하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강남 8학군 같은 교육구가 좋은 도심지역으로 이사하려는 한국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호주 사람들이 소위 '이상적인 삶'이라고 여기는 모습은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넓은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수 있는 주택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동네 사람들(아이들이 있는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는 평화로운 풍경이 많다. 아이들 정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


행복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우리 가족의 삶도 변하고 있다.

나는 좋아했던 시티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기로 했다. 주택은 평화롭고 안전하지만 그만큼 번거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했다. 모든 선택의 이유는 오로지 행복이에게 무엇이 더 최선의 선택인가? 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안전하고 가장 좋은 환경에서 행복이가 유년기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가정환경과 주변 환경이 반드시 한 사람의 유년기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풍족하고 온화한 마음과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 친구들이 행복이 옆에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 동네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행복이를 위해 많은 것을 바꾸고, 때론 포기하고, 감내해야 하겠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포기도 희생도 행복이의 웃음과 함께하는 일상만큼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기르면서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그 어떤 포기나 희생도 아이의 존재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쁨, 환희, 행복, 삶이 충만하다는 만족감에 비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행복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단연코 내 인생에서 그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 해도 아깝거나 번거롭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택에서 살게 된 우리가 겪어야 할 난관은 그런 행복한 상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내 깨달았다. 이건 정말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먼저, 쓰레기 분리가 번거로워졌다. 물론 호주는 한국처럼 엄격하고 여러 분류로 쓰레기를 나눠 배출하지는 않는다. 주마다 다르고 담당하는 카운실 마다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 구역의 경우 매주 쓰레기통(녹색), 재활용(파란색) 그리고 식물, 나뭇가지 전용(빨간색)으로 일반 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이랑 식물 나뭇가지 전용 쓰레기는 격주로 가져간다. 쓰레기 버리는 날에 집 앞에 제때 밖에 꺼내 놓지 않으면 쓰레기통을 다음 주 혹은 그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에게는 아주 새로운 일이다. 이제야 비로소 브라이튼에 인원이 되었다. 도클랜드에 살 때는 소음도 많고 주변에 공원이 별로 없어서 행복이와의 산책 때마다 차나 다른 위험한 것이 다가오지 않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행복이와 함께하게 되면서 내 주변은 처음으로 고요해졌다.


고요함. 외로움에 틀어놓던 배경 같은 음악도, 도심의 소음, 늘 북적이던 사람들의 말소리도 사라졌다. 그저 쌔근쌔근 자는 행복이의 숨소리. 행복이가 좋아할 것 같은 음악 소리만 가끔 흥얼흥얼한다. 집 안에 아이가 있으면 자연스레 집이 조용해진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는 잠이 깰까 봐 소리를 내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면 아이가 놀랄까 봐 필요하지 않다면 TV조차 틀지 않게 된다. 한번은 행복이를 이제 막 재웠을 때 갑자기 울린 내 핸드폰 벨소리에 행복이가 깜짝 놀라 울어버려 벨소리마저 줄여버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더 이상 내 주변을 소리로, 사람으로 채우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이것도 행복이가 가져온 기적 같은 내 삶의 변화일까? 집 주변을 둘러보며 가득한 푸르름과 오로지 자연이 내는 소리들이 주는 안정감을 느껴보았다. 우리집 주변에 공원도 많고 조용하게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첫날부터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도클랜드에서 하는 산책이랑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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