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늦잠이 간절하게 필요한데…’ 매일 아침 행복이가 나를 깨워서 도저히 늦잠을 잘 수가 없다. 그 사실이 오늘은 너무 싫다. 사실 아침잠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잘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자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이가 자는 시간이 그나마 유일한 자유시간인데 행복이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자유 시간이 끝났구나.’
요즘 패션쇼 준비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밤 늦게까지 아이디어 구상 및 디자인에 옷 샘플을 만들어 보고 있다. 어제 밤도 늦게까지 디자인을 생각하는데 행복이가 갑자기 12시에 일어나더니 통 다시 잠들지를 않아서 1시간이나 행복이를 안고 있었다. 혹시나 어디가 불편해서 이러는 것인지 걱정이 되어서 다시 행복이가 잠든 후에도 계속 지켜보느라 거의 밤을 세다시피 했다. 오밤중에 자지 않고 우는 행복이를 안고 있을 때면 정말 가끔 아이가 너무 울어서 입을 막아버리거나, 살짝 꼬집었다는 엄마의 사연을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이 떠오르면서 정말 이해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행복이로 인해 행복한 시간만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인내심도. 사람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 다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날 아침에는 아침부터 일어나 우는 행복이의 요구가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울거나 말거나 안아주지 않고 그냥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행복이가 머리를 땅에 헤딩하더니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급히 놀라서 머리를 확인해보니 살짝 혹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악마같이 나쁜 아빠인가봐.’
어떻게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또 이렇게 순간 다치는 것조차 막지 못한 걸까? 이럴 때 정말 내가 인간적으로 악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 자신의 매정함에 놀라곤 한다. 어떻게 아이가 우는데 달래지도 않고 귀찮아하기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아빠 자격이 있긴 한 걸까? 그런 생각에 자괴감이 들어 더 힘들어진다. 한참을 올라온 행복이 머리의 혹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나 자신을 계속 자책한다. 행복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 이런 작은 상처 하나조차 내가 나쁜 아빠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돌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하면서 절망으로 더 빠져들고야 만다.거기에 패션쇼를 준비 해야 하니 나는 조금씩 지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행복이를 얻고 싶어서, 내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그렇게나 즐겁게 살아가던 게이로서 나의 자유로운 삶도 포기했다. 행복이를 손에 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슬픔과 절망의 늪을 건너왔던가, 그 늪을 건너오는 동안 정말 행복이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어느 가시덤불 숲이라도 건너가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대리모 과정에서 돈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행복이가 날 깨워서 싫다고 생각하고 있고, 행복이가 울음을 알아서 그치기를 기다리는 나쁜 아빠 노릇이나 하고 있고, 요즘엔 행복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미뤄둔 일 생각으로 가득하다.
‘행복아. 아빠 팔이 아픈데,, 이제 좀 내려가서 놀면 안 될까?’
행복이가 내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설득하고 있다. 오늘은 설득이지만 가끔은 욱해서 짜증을 내기도 한다.
‘행복아. 언제쯤 혼자 밥 먹고 옷 입을 수 있을까?’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 “낳아놓으면 알아서 커~” 라고 말한 그 누군가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대체 언제 알아서 큰다는 말일까? 정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라는 동화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날은 하루 24시간 중 거의 반절은 행복이를 안고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갓난아기일 때는 5kg도 되지 않았기에 들고 있을 만했지만 이제는 정말 좀 오래 안고 있으면 묵직하고 팔이 뻐근해져 올 정도이다. ‘이런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요리도 하고, 장도 보다니…’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행복이와 만난 순간은 내 인생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던 것이다. 진짜 육아의 시작. 문득 내가 너무 안일하게 육아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통해 공부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만하다고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이는 특별하니까, 누구보다 특별하게 키울 거고, 어떤 부모보다 부족하지 않게 잘 키울 거라며 자신만만했던 1년 전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때의 내가 상상했던 데로 행복이는 너무나 특별한 아이임에는 분명하지만 내가 특별한 아빠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나도 그저 평범하게 육아가 힘들고, 버겁고, 가끔 도망치고 싶어 하는 보통의 육아하는 부모 그리고 아빠였다.
육아는 저절로 그냥 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노력을 해도 잘못되기도 하고, 노력한다고 아이가 부모 마음대로 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열 가지를 잘해도 한 번 아이가 다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다. 왜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답이 없는 것이 육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많이 안아주는 것이 아이의 애착 형성이나 정서발달에 좋다고 하여 많이 안아주었더니 이제는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아주지 않고 내버려 두고 키우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아 불안한 자존감이 생길까 두려웠다. ‘적당히’ 하면 좋다고 하지만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표본처럼 볼 수 있는 환경에 사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아이는 다 다르다는 것을 이제껏 몇몇 아이들을 보며 너무 잘 알았기에 행복이를 키울수록 인터넷이든 책이든 어디에서 본 정보도 결국 행복이에게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부모가 어떻게 키우든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자란다. 그리고 그 마음대로 하는 와중에 오늘처럼 다치거나 일이 벌어지면 부모는 그마저도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해버리고야 만다. 그런 것이 부모의 입장이고, 이렇게 다치고도 또 자기 가고 싶은 데로, 놀고 싶은 데로 해달라고 조르는 게 아이의 입장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모든 것을 너무나 쉽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걸었다!!!!!!!!!!!!”
그런 온갖 생각과 고민과, 절망 언저리에 잠겨있는데 오후 4시쯤, 갑자기 행복이가 걸었다. 순간 큰 소리를 내면 행복이가 놀란다는 것조차 기억나지 않아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자 내 소리에 놀라 행복이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다시~ 다시 걸어봐 행복아! “
앉아버린 행복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걸어보라고 말했다. 내가 방금 전 본 광경이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그러면 대낮에 환영을 봤거나 꿈을 꾼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주춤 하더니 행복이가 다시 한 발을 앞으로 떼었다. 또 한 발. 그 순간 지금껏 했던 모든 고민이 날아가 버렸다. 열심히 키워보자. 행복이가 뛸 때까지, 세상에 나갈 때까지, 아니 평생 행복이의 모든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이 될 테니까. 오늘만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들 바보가 되었다. 자신의 첫 생일을 7일 남겨두고 행복이가 드디어 첫발을 걸었다. 저 작은 발로 이제 더 많이 걷겠지? 정말 가슴이 벅차 올라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