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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자마자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어

by Ding 맬번니언

엄마가 이번한국 방문에는 큰누나는 보지 말고 그냥 가라고 해서, 저는 큰누나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음 주에 있을 한국 여행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작은누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나 다음 주 월요일에 한국 도착이야. 그런데 수요일쯤 고향에 갈 예정인데, 누나야 그때 시간이 어떻게 돼?"라고 물었죠. 사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누나도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길 기대했어요. 그런데 누나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 그때 캠핑 가는데, 토요일쯤에나 돌아올 것 같아." 그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제가 고향집에 가는 일정과 겹치기 때문이었죠.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가는 건데, 그때 누나와 시간을 보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그럼 언제 시간이 되는데?"라고 다시 물었더니, 누나는 토요일 오후에나 온다는 겁니다. 즉, 제가 고향을 떠날 때쯤에서야 누나가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죠. 한마디로 이번 한국 방문에서 누나들을 만나지 못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어요.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타국에서 살면서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이번 한국 방문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서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제대로 보내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슬픔이 밀려왔어요. 가족에게 저는 그저 이런 정도의 존재인가, 제가 얼마나 그리워하며 이 시간을 기다렸는지 가족들이 알고는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어요.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였어요.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고, 그 만남을 위해 계획하고 기다렸는데, 이번 일로 그런 기대가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누나와의 대화를 통해, 제가 한국 가족에게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여겨지는지 깨달았고, 그 생각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큰 실망으로 바뀌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가족을 보러 가는 의미가 퇴색되는 이 감정이 너무나도 슬프고, 앞으로 매년 이렇게 한국을 방문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있는 가족을 조금씩 제 마음속에서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호주에 있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이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한국 가족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 맞게 다른 일정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주변 게이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다들 하나같이 한국 가족들의 입장이 이해된다고 하더군요. 특히 호주 사람과 함께 고향집을 방문하다 보면, 서양 사람과 함께 다니는 것이 더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상황이 되다 보니, 한국 가족들이 더 조심스럽고 신경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족들이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씁쓸한 감정이 남아 있어요. 저희가 게이 가족이라는 이유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호주 가족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앞으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일정을 계획하며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현이의 이야기는 제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주현이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가족에게 커밍아웃했고, 그 이후 가족들과 함께 게이 커플로 행복하게 한국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며 지내고 있어요. 그러나 어느 날, 주현이의 누나가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고백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어요. 누나의 딸, 그러니까 주현이의 조카가 "나도 삼촌처럼 여자가 좋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거예요. 누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같이 죽자"며 울었다고 하더군요.


주현이는 그런 누나를 차분하게 위로하면서 "게이나 레즈비언은 비정상적인 게 아니야. 그리고 아직 아이는 사춘기니까 조금 더 지켜보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해요. 주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주현이의 누나는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자식이 레즈비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이 사건은 가족 내에서의 수용과 이해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관계, 사랑,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 얽히면서 복잡한 감정들이 발생하곤 해요. 특히 부모가 자식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부모 자신이 그동안 배워왔던 가치관, 사회적 규범과의 충돌을 겪는 일이기도 하죠. 주현이의 누나는 동생이 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이미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가 같은 상황에 놓이자,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쌓아왔던 사회적 편견과 두려움이 다시금 표면으로 드러난 거죠. 이는 단순히 성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서 자녀를 향한 기대와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불안감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라고 생각해요.


가족이란 서로의 가장 큰 지지자이면서도, 때로는 가장 큰 도전과 맞서는 관계 같아요. 이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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