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ower Me 패션쇼의 개최목적은 모든(사이즈, 인종 등) 여성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축하하는 것에 있다. 매일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해 행운의 숫자 처럼 7명의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디자이너가 자신의 컬렉션을 Empower ME에서 선보인다.
오늘이 오기까지, 3벌의 옷을 새로 만들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특히 처음 도전해본 플러스 사이즈 옷 만들면서 느낀 좌절감은 이전에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좌절감이었다. 첫 도전이었던 데다 누구(멘토)에 도움 없이 혼자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일해야 했기에 이번 일은 시작부터 도전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녀의 체형에서 그녀가 감추고 싶어 할만한 부분을 옷으로 가리고 날씬해 보이는 옷을 디자인할까? 라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감추고 날씬해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이 패션쇼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그녀가 가진 자신감과 매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그녀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곧 관두었다. 그리고 다시 디자인을 처음부터 수정해 긍정적인 자신감과 건강미를 강조하며 육감적인 그녀의 몸을 옷 속에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브라와 치마를 디자인 방향으로 새로 잡았다. 그리고 이후로도 수많은 고민과 수정, 수정, 수정을 거듭한 끝에 옷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모델들이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헤어 및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되고 준비된 모델들이 무대로 나가 멋있게 포즈를 취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디자이너들은 주로 무대 뒤에서 모델들과 함께 무대 올라가기 직전까지 옷맵시랑 액세서리 등을 체크해야 하기에 나도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 쇼에서 내가 새롭게 선보일 3벌 중 성공한 옷은 딱 한 벌, 그것도 가장 어려웠던 플러스 사이즈 의상이었다.
가장 걱정했고, 가장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무사히 쇼에 올리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하며 준비했던 그 의상이 나의 유일한 성공작이 되었다. 왜일까? 처음 쇼를 준비하며 그녀가 무대에 설 자신감을 잃을까 봐 많은 부분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왔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간 그녀의 당당한 워킹과 포즈는 슈퍼 모델 같았다.
얼마나 멋있었던지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다시 한번 일하고 싶을 정도였다. 반면 생각지도 않게 다른 두 번째 의상이 현장에서 정말 엉망이 되어 패션쇼에 무사히 선 것만해도 다행인 수준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패션쇼를 위한 쇼 피스라 보기엔 너무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입는 옷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튀는 어중간한 피스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종이 위에 디자인을 할 때는 내 머릿속에 있던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모델이 입고 다닐 것만 같아도 실제로 옷으로 만들어 구현해내다 보면 상상과는 전혀 다른 옷이 나올 때가 있다. 다르게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을 때 모두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만, 혼자였던 시절이었다면 분명 잠을 안 자고서라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완성해야만 하는 시간적 제약과 행복이 육아 등 디자인 말고 내가 해야 할 일까지 생각해 움직이다 보니 '어떻게든 지금 상태에서 해보자.'라며 수습만 하게 된다. 이번 일도 그랬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소리칠 수도, 소리치지도, 소리친다고 해서 누가 듣지도 않을 그 말을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계속 토해내는 심정으로 일을 정리하고 소파에 멍 하니 앉았다. 마치 엄청나게 큰 철로 만든 실 뭉치 같은 것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나를 할퀴듯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대충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만큼의 끈기는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내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고 왔다는 사실이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루 종일 움직이고 집에 돌아오니 또 행복이의 장난감이며 잡동사니가 널 부러진 집 안이 보여 내가 대체 뭘 위해 바빴는지조차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내게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행복이가 조금만 더 아빠 말을 잘 들어줬다면’.
‘내가 조금만 더 체력이 강해서 더 잠을 줄였어야 했을까?’
이런 후회의 생각들만이 쇼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고 어느 쪽을 핑계로 삼고 싶지 않았고 이전에 그런 핑계를 대는 부모들을 보며 '저렇게 어느 쪽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한심한 부모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원래 한 가지 일에 대한 집중력이 있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옷을 만들 때는 하루 종일 옷을 생각하고 싶은데 옷을 만드는 데 행복이가 옆에 있으면 행복이를 돌봐야 되고 그럼 일을 멈추어야 했다.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영감이 떠올랐다가도 계속 작업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계속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쇼 당일까지 신경이 곤두서다 보니 행복이에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못했다는 후회까지 몰려오며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물듯 쇼가 끝나자마자 나는 후회만 거듭하고 있었다. 마치 우울증에 빠진 것처럼.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후 처음 겪는 큰 실패와 좌절감. 열정과 즐거움만 가득했던 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시간은 온데간데없으니 모두 어디 가 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