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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 맬번니언 Nov 04. 2024

18년 된 커플의 데이트

스티븐과 오랜만에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행복이를 키우며 둘이서만 특별한 시간을 가지는 일이 흔치 않아서, 이번 데이트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이번에는 빌리지 골드 클래스에서 ‘조커 2’를 보며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무엇인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이었죠.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서로를 위한 작은 이벤트에 대해 무뎌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빌리지 골드 클래스의 경험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널찍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종업원의 세심한 서비스를 받으며 샴페인과 간식을 즐기며 영화를 관람하니, 마치 신선한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 속 이야기로 빠져들면서, 둘 다 설레는 마음으로 긴장과 기대에 푹 빠졌습니다. 중간중간 영화에 사랑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는 서로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큰 의미가 느껴졌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손을 꼭 잡고 있는 그 순간이, 오랜 시간 함께한 우리의 유대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어요.


영화는 흥미진진했지만, 결말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을 나누고, 좋았던 장면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무뎌지기 쉬운 관계 속에서도, 이렇게 작은 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그 과정을, 이렇게 특별한 시간 속에서 더욱 따뜻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미리 예약해 둔 고급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살짝 들뜬 기분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둘만의 저녁 식사라 그런지, 테이블에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나누는 순간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며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때로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으며 그야말로 편안하고 따뜻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2시간 동안 이렇게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상에 묻혀 지내던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하나 선명해졌습니다. 평소에는 바쁜 생활에 묻혀 있던 우리의 소소한 감정들이 오늘 밤에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가와 주었죠. 이젠 우리에게 사랑이 깊어지면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의 작은 일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처럼 손을 잡고 영화를 보며 미소를 나누고, 식사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오래된 부부이지만, 이렇게 특별한 순간을 통해 다시금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아요. 나란히 시간을 쌓아가며 서로에게 더욱 깊이 스며드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오늘이 참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게이 클럽에 들렀습니다. 언제 가도 젊은 열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라 매번 새로운 활기를 느끼게 됩니다. 클럽 안은 늘 사람들로 붐벼 북적거렸죠. 한국에서는 보통 자정쯤 클럽이 시작해 새벽 2시나 3시쯤 가장 활기가 넘치지는 것처럼 호주도 비슷하지만 저희는 이제 그런 늦은 시간까지 노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너무 피곤해지더라고요. 그래서 1시쯤 우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그 분위기와 에너지 덕분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즐겁고 특별한 하루를 보낸 기분입니다.



스티븐과 함께한 오랜만의 데이트는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나 설렜던 순간들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을 주었고, 하루 내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행복이를 키우면서 둘이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드물었던 만큼, 이번 데이트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익숙함에 묻혀 평소에는 잊고 지냈던 서로를 위한 작은 이벤트와 배려가 새삼스레 귀중하게 다가왔죠. 이제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지만, 오래된 커플만이 느낄 수 있는 따스함과 편안함이 또 다른 사랑의 형태임을 실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섹스 대신  말없이 침대에 누워 피곤함에 빠져 곤히 잠드는 것도, 이제 우리만의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격렬했던 청춘의 열정은 잦아들었지만, 함께 쌓아온 시간과 신뢰가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중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사랑의 형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 느꼈던 열정이 다소 잦아든다 하더라도 두 사람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즐기고, 변화에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보세요.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가는 사랑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감동이 있으니까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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