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45살, 저는 운 좋게 지금까지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한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빠르고 정확한 의료 시스템이 항상 좋게 느껴졌습니다. 감기 같은 간단한 질병에도 손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고, 의료비도 비교적 저렴해서 저에게 딱 맞는 환경이었죠. 그런 이유로 저는 호주의 의료 시스템이 늘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18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작은 병이라도 의사를 만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특히 한국의 체계적인 건강보험 제도와 비교하면 호주의 의료비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수술과 친구 Wanna를 방문하며, 저는 다시금 호주의 의료 시스템이 가진 큰 장점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저희 아빠가 6년 전에 겪었던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며 더 강렬해졌습니다.
6년 전, 아빠는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펐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직후 병원에서는 바로 병원비 청구서를 내밀었고, 병실을 잡으려면 먼저 비용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병원비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태를 지켜볼 수도 없었고, 재활 병원으로의 이송 과정 역시 전적으로 가족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치료가 '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냉혹하게 다가왔습니다.
더욱이 실비 보험이 없었던 저희 가족은 모든 의료비를 직접 부담해야 했습니다. 중환자실 치료비부터 재활 치료비까지, 모든 것이 가족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아빠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부담과 생계 문제는 우리를 더 깊은 고민과 갈등으로 몰아넣었습니다.
6년 동안, 이 상황은 가족 모두에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특히 작은누나는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병원비 부담에서 중도 하차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큰누나와 저는 끝까지 함께 아빠의 병원비를 부담하며 아빠가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헌신 덕분에 아빠는 여전히 재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언제 간 부터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6년 동안 엄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이제 자식들 고생시키는 것도 끝내야지. 아빠가 편히 가시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를 사랑하시지만, 자식들이 계속해서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죄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뒤섞여 묘한 감정이 들곤 했습니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아빠를 위해 사랑과 책임감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습니다. 의료비라는 경제적 부담이 가족 모두의 희생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저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제가 일을 하는 동안은 아빠 병원비는 제가 책임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요." 이 말을 들으신 후로, 엄마는 더 이상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작은 안심이 엄마에게도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현실의 무게를 나눠 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그 안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다시금 실감하고, 서로에게 기대어 버틸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은 방법을 찾았는데 저희보다 상황이 안 좋은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무슨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반면 Wanna를 보면서, 호주의 의료 시스템이 환자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실감했습니다. Wanna는 중증 환자로서 재활과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병원비와 돌봄 비용은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경제적인 부담 없이 그녀의 회복 과정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Wanna와 그녀의 가족이 의료비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의료 시스템이 환자와 가족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빠의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한국과 호주의 의료 시스템 차이를 절실히 느낍니다. 한쪽은 가족의 경제적 희생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환자의 회복과 가족의 안정을 동시에 보장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제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가야 할지, 어떤 환경에서 가족을 돌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국, 의료 시스템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문제를 넘어,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삶의 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호주의 의료 시스템이 가지는 장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삶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가진 각각의 가치가 모두 중요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