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리듬의 동행
아침부터 비는 오락가락했다.
잠시 개일 듯, 하늘이 밝아지다가도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와 굵은 빗줄기를 쏟아냈다. 창밖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흘러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기다림 대신 걷기를 택했다.
숙소가 있는 조용한 주거지인 '바스코 드 가마' 길거리(Rue Vasco de Gama)를 벗어나자, 비에 젖은 돌바닥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차가 드문 거리를 따라 걷는 발걸음은 빗방울의 리듬에 묶여 들고났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무겁게 시작해 가볍게 흩어지고, 다시 거세게 몰려오기를 반복했다. 파리의 오늘 하루는 그 리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걷다가 작은 베트남 쌀국숫집 ‘비 하노이’(Vi Hanoi)에 들어섰다. 지난번에 한 번 다녀갔었는데, 그런대로 맛이 좋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네 식당이었지만, 내부는 의외로 활기로 가득했다. 정오가 막 지난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비 오는 날씨 탓에 나처럼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서인지,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이미 손님들로 제법 자리가 차 있었다.
사람들은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에 고개를 묻은 채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빗속을 뚫고 온 이들이 한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는 풍경이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겨우 앉았다. 따뜻한 국물이 잠시 후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향신료의 묘한 향이 피어오르고,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올리자, 허공이 순식간에 김으로 가득 찼다. 국물 한 숟가락이 속으로 들어가자, 빗길을 걸어온 피곤이 녹아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여행자라는 낯섦도, 빗속의 고단함도 모두 흩어졌다.
식당을 나서자 비는 다시 굵어졌다. 우산 위로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드럼 스틱처럼 나름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메트로 샤흘르 미셸 역(Charles Michels) 입구를 지나 센강변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이곳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몰려들고 빠져나가는 지하철역 입구에서는 그들의 일상에 우리도 잠시 섞였다가, 곧 다시 이방인의 자리에 돌아왔다.
빗줄기에 쫓기며 센강 쪽으로 걸음을 조금 더 옮기자, 도로 양편으로 흐린 하늘을 배경 삼아 빗속에서도 반짝이는 유리로 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보그르넬’(Beaugrenelle) 쇼핑몰이었다.
쇼핑센터 '보그르넬'은 파리 15구, 센강의 ‘그르넬 다리'(Pont de Grenelle) 남쪽에 자리한 도심형 쇼핑몰이다. 1979년에 처음 문을 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시설이 낡고 노후화되어 그 빛이 바래게 됐고, 결국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전면 재개발해 2013년 가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백여 개의 매장과 레스토랑, 서점과 영화관, 그리고 2019년부터는 파리 쇼핑의 아이콘인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백화점이 이곳의 간판 매장, 흔히 말하는 '앵커 테넌트'(achor tenant)로 입점해 있었다.
외벽은 마름모꼴 격자무늬가 반복된 기하학적 유리 패널로 짜여 있었고, 멀리서 바라보는 윤곽은 차갑지만 부드러운, 매끈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겹겹이 이어진 기하학적 무늬가 벌집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마치 센 강변에 정박한 커다란 유리 유람선을 닮은 듯도 보였다. 보그르넬 쇼핑몰은 이웃과의 연결성, 개방감, 환경성을 높인 세 개의 유리 건물이 유리 보행교와 통로로 연결된 구조다.
우리는 젖은 우산을 접고, 그 따뜻한 빛 속으로 발을 들였다. 바깥에서는 차갑고 날 선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안쪽은 부드러운 조명이 은은히 공간을 채우며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내고 있었다.
아내의 오늘 쇼핑목적은 분명했다. 편안한 바지를 사는 것. 그러나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목적은 금세 확장되었다. 바지 진열대 앞에 한참 서 있던 그녀는, 이내 외투며 티셔츠 앞에서도 머물렀다. 반짝이는 액세서리 진열장은 발걸음을 붙잡았고, 전혀 계획에 없던 가방 앞에서도 한참 시선을 주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려는 바지만 보고 골라 사면될 텐데...”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치면 아쉽잖아. 사지 않아도 둘러보는 거지. 아이쇼핑.”
“요즘 어떤 스타일이 나오고 있는지 봐둬야 다음에 참고도 하지.”
쇼핑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가 분명했다. 나는 사고자 하는 물건만 곧장 보고 고르는 ‘목적형’ 쇼핑객이었고, 아내는 나온 김에 이것저것을 즐기며 들러보는 ‘탐색형’ 쇼핑객이었다. 나의 길이 직선이라면, 아내의 길은 곡선과 나선에 가까웠다.
쇼핑을 시작하고 처음 한동안은 나는 충실했다. 매장을 함께 돌며 이것저것을 보았고, 가방을 들어주고, 아내가 고르는 옷을 곁에서 지켜보며, 거울 앞에 선 아내에게 “괜찮네, 잘 어울려”라는 감탄도 보탰다. 그러나 내 인내심의 시계는 늘 정확하다.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한 시간.
그 시간이 지나자,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얼굴은 굳어졌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이곳까지 빗길을 걸어온 터라 더 일찌감치 카페의 의자가 앉아 쉬라는 듯 내 눈길을 끌었다.
그러다 마침내, 내 입에서 투덜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지를 사려고 왔으면, 바지만 보고 사면 되지 않나?”
“살 것만 보자고...”
아내는 웃으며 대꾸했다.
“나온 김에, 보는 김에. 조금만 더...”
그 순간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어쩌면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아내의 여행이고, 동시에 나의 여행이라는 것을.
흥미로운 건, 이 장면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곳에서도 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국적과 인종은 달라도, 남편들의 표정은 모두 닮아 있었다.
양손에 쇼핑백을 든 채 무표정하게 서 있는 얼굴, 지친 어깨와 피곤한 걸음걸이 그러나 끝내 자리를 지키는 모습. 그들은 모두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보그르넬 쇼핑몰도 전 세계 남편들의 피곤한 연대와 아내들의 설렘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결국 우리는 함께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유리창 너머로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사이에서 나눈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조율의 순간이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난 한 시간이 한계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좋아. 당신은 여기 앉아서 쉬면서 기다려요."
“나는 조금 더 둘러보고 올게요.”
"응, 그러는 게 좋겠네. 더 보고 싶으면 다녀와.
난 여기서 좀 쉬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 순간, 서로의 방식은 충돌이 아닌 배려와 합의로 이어졌다. 아내는 다시 쇼핑몰의 불빛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자리에 남아 빗물이 흐르는 센강을 연상하며 지친 발과 숨을 고르기로 했다.
이 쇼핑몰 가까이에 있는 센강과 그르넬 다리가 떠오르자, 이내 며칠 전 걸었던 그르넬 다리 중간의 좁고 긴 인공섬 ‘시뉴 섬'(Île aux Cygnes, 백조의 섬)이 빗소리에 실려 눈앞으로 겹쳐왔다. 그 섬 서쪽 끄트머리에는 대서양을 향해 고요히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었다. 이 조각상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파리 거주 미국인 공동체가 기증한 것인데,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약 4분의 1 크기에 해당한다. 처음엔 에펠탑을 향해 서 있었으나, 지금은 대서양 건너 멀리 뉴욕의 자매상을 바라보며 서 있다.
뉴욕 '리버티 섬'(Liberty Island)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본래 프랑스 국민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건넨 우정의 선물이었는데, 제작과 설치과정 등에 시간이 걸려 실제 완공과 제막은 1886년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Liberty Enlighting the World)”다. 그 거대한 조각상은 자유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이상 그리고 대서양을 건넌 우정을 증언하듯, 지금도 대서양을 향해 허드슨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목을 바라보고 서 있다. 파리 센강의 자매상 역시 묵묵히 침묵 속에서 같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빗속의 보그르넬 쇼핑몰 한 카페에 앉아서, 한동안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유의 횃불이 대서양 너머로 서로의 빛을 건네듯, 저마다의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고 있었다. 카페에서의 쉼과 웃음, 매장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 속에서 프랑스가 꿈꾸는 "자유·평등·박애"의 이상은 여전히 일상의 어딘가에서 작은 숨결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지금도 유효한가. 나는 그런 물음을 안은 채, 오늘 파리의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카톡이 울렸다. 아내였다.
“위층 매장에 있으니까 잠깐 올라와요.”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위층 매장 한쪽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때? 이거 괜찮아 보여?”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내는 내게도 얇은 긴팔 셔츠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당신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한번 입어봐.”
나는 피팅룸에 들어가 셔츠를 걸쳤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었지만,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아내의 아이쇼핑은 단지 자기 물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지 않을 물건들 앞에서 멈추고 웃던 시간 속에는, 언제나 나를 위한 눈길과 배려가 숨어 있었다. 아이쇼핑은 그녀의 즐거움이었고, 동시에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이기도 했다.
그날의 ‘보르그넬’ 몰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었다.
빗속을 걸어 도착한 쌀국숫집의 따뜻한 국물, 사지도 않을 것들을 즐겁게 구경하는 호기심.
아내의 설렘과 나의 피곤.
바지를 고르던 아내의 진지함, 셔츠를 내밀던 아내의 다정함.
내 한 시간짜리 인내심과 투덜거림, 그리고 카페의 고요한 휴식.
그 모든 차이와 교차가 얽히며, 하나의 여행 얼굴을 이루어갔다.
여행은 화려한 명소나 유명한 박물관에만 있지 않다. 단순히 풍경을 보고 물건을 사는 일만도 아니었다. 같은 길 위를 걷더라도, 서로 다른 리듬과 방식이 겹겹이 포개져 하나의 여정을 빚어낸다. 때로는 투덜거림과 웃음이 오가고, 직선 같은 길과 곡선 같은 여유가 엇갈리지만,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갔다.
그날, ‘바스코 드 가마’ 거리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센강 좌안(rive gauche, 左岸) 파리 15구의 ‘보그르넬’ 몰에 닿았다. 그곳에서 비와 유리, 웃음과 피곤이 교차하는 오후 한가운데를 지나며 나는 다시 한번 더 마음에 새겼다.
동행이란 함께 걷는 발걸음의 서로 다른 리듬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나란히 걷는 것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