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옹의 기억과 파리의 자유를 따라 항해하다
파리의 거리를 걸을 때면, 자유와 예술의 오래된 숨결이 시간을 건너 이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19와 이런저런 이유로 8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낯설지 않았지만, 왠지 새롭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의 기억이 층층이 쌓인 거리 위로 이른 가을의 공기가 스며들고, 그 공기 속엔 여전히 자유를 꿈꾸던 도시의 기운이 살아 있었다.
이 도시의 오래된 흔적과 숨결 속으로, 나는 한 걸음 나아간다.
파리의 아침 공기는 맑고도 선선했다. 여름이 끝나가는 이른 가을의 금요일 아침, 나는 오랜만에 다시 파리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채비를 한다. 그중 하나가 오갈 때 사용할 대중교통 카드를 마련하는 일이다. 파리의 일주일 정기권은 월요일에 시작되는 방식이라, 오늘과 주말 동안은 일회용 승차권이 필요하다.
파리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바뀌어져 있었다. 한 시절의 기억이 또 하나의 페이지를 덮는 듯했다.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가벼운 긴장감 속에서도 지하철과 버스, 파리의 골목과 거리는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8호선 루흐멜 역(Lourmel)으로 향한다.
지하철 개찰구 옆 매표소에서 일회용 승차권을 충전해 담은 파리 교통카드 '나비고 이지'(Navigo Easy)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제 오늘과 이번 주말 동안 파리를 오갈 작은 동반자를 마련한 셈이다. 다음 주 월요일, 일주일짜리 정기권을 장만할 때까지 '나비고 이지'에 의지해 다니면 된다.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밀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나비고'(Navigo)라는 이름은 라틴어 "나는 항해한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도시를 건너는 우리의 하루가 작은 항해와도 같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난번 파리에 머물렀을 때는 '나비고 이지'가 없었다. 일회용 마그네틱 종이 승차권과 일주일이나 한 달 정기권을 담은 연보랏빛 '나비고 데쿠베르트'(Navigo Découverte)가 파리의 일상을 나누어 책임지고 있었다. 한때 파리의 지하철과 버스에서 사용하던 종이 티켓은 이제 더 이상 낯익은 풍경이 아니었다.
교통 요금 체계도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파리와 파리 근교인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지역을 다섯 개의 권역(zone)으로 나누어 요금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권역 구분을 없애고, 1 존부터 5 존까지를 하나의 권역으로 통합하여 단일요금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반면에 예전에는 지하철과 버스의 일회 승차요금이 동일하여, 하나의 티켓으로 두 교통수단을 함께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충전식 교통카드 '나비고 이지'의 도입과 아울러 지하철과 버스의 요금이 각각 2.5유로와 2유로로 달라졌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시간은 같았던 것을 달라지게도 하고, 다르던 것을 같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없던 변화가 잠시 낯설었지만, 파리는 나름의 느릿한 호흡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이제 받아들이고 있었다. 종이 티켓을 입구에 넣던 방식에서 비접촉식 카드를 찍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바뀌며, 오늘날의 파리 대중교통은 이제 사뭇 다른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서울이 2009년에 이미 떠나보낸 종이 승차권을, 파리는 2025년에야 느지막이 손에서 놓고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작은 동작 속에, 도시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천천히 변하는 도시, 그러나 그 느림마저 파리답게 보였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오데옹 역에서 내리자, 나는 곧장 오데옹 길(Rue de l’Odéon)로 접어들어 오데옹 극장을 향했다. '오데옹'(Odéon)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해 '노래가 울리는 집', 곧 음악과 시 낭송을 위한 지붕 있는 소극장을 뜻한다.
'유럽의 극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오데옹 극장(Odéon-Théâtre de l'Europe)은 1782년,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Marie Antoinette)의 후원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지금의 건물은 개관 이후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뒤, 1819년에 세 번째로 다시 세워진 것이다.
오데옹은 파리의 한 모퉁이에 자리한 작지 않은 울림의 공간이지만, 극장과 서점 그리고 광장이 어우러져 언제나 무대처럼 열려 있다. 반원형 광장에는 다섯 갈래의 길이 정연하게 뻗어 있고, 극장 양옆의 두 갈래 길은 남쪽의 뤽상부르 공원으로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반원형의 극장 앞 광장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오늘의 일상 속으로 잇고 있었다.
현재는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오랜 역사의 극장이지만, 이곳은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Beaumarchais)의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이 처음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 장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사회적 신분과 특권의 경계를 드러내 보이며, 사랑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자유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유머와 풍자로 보여주고 있다. 이 희곡 속에는 '사회적 자유'를 꿈꾸던 숨결이 고스란히 맺혀있다.
피가로의 결혼은 희곡 자체에 대한 검열로 약 6년간이나 상연이 금지된 채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1784년 4월 27일, 마침내 오데옹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공연은 격정적이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왕권과 귀족사회를 향한 풍자와 해학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사회가 안고 있던 긴장과 갈등을 은근히 드러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작품은 시대와 맞물려 그 상징적 의미를 덧입기도 하였다.
연극 '피가로의 결혼' 초연 후, 같은 줄거리는 2년 뒤인 1786년 모차르트의 손에서 오페라로 다시 태어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의 하나가 되었다. 같은 줄거리이면서도, 한쪽은 마치 혁명을 예고한 연극처럼 여겨졌고 다른 한쪽은 자유로운 인간을 꿈꾸는 노래였다.
이 모든 바탕에는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그 자유를 얻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본능에 가까운 자유를 쫓는 우리의 갈망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오데옹 극장을 끼고 걸어 나아가면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시민들이 사랑하는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빛을 통과한 잎사귀들이 어깨를 스치듯 흔들리고, 공원 가운데 연못에서는 아이들이 작은 배를 밀며 웃음소리를 터뜨린다.
소르본대학 곁의 파리 도심 속 이 공원은 예전에 자주 찾던 곳이라, 그 시절의 애환과 상념이 자연스레 녹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파리 시절의 젊은 헤밍웨이 역시 이 공원을 종종 거닐었다고 하니, 이곳에는 오래된 문학의 기운 또한 은은히 배어 있는 듯했다.
골목을 돌아 식당 '폴리도르'(Polidor)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오래된 식탁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예전부터 파리에 오면 늘 한 번쯤은 들렀던 곳이라 그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다. 1845년에 문을 연 폴리도르는 소박한 프랑스 가정식 같은 음식이 가격 대비 맛도 좋아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폴 베를렌, 랭보, 제임스 조이스,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이오네스크, 보리스 비앙 같은 문인들, 그리고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이 뒤섞여 드나들던 대중의 식탁으로 알려져 오늘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이 폴리도르 식당은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고, 내게는 그만큼 더 친밀하게 다가오는 공간이 되었다.
수프의 김이 은근히 오르는 사이, 내 머릿속에서는 오래전에 본 이 영화의 한 장면이 조용히 겹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 길 펜더(Gil Pender)는 이 식당의 테이블 어딘가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게 자신이 쓴 소설 원고를 읽어봐 주길 부탁한다.
맞은편의 사내 헤밍웨이는 솔직한 말투로 직접적인 평을 피한 채, "진실되게 써야 한다"는 뜻을 담담히 피력한다. 그 말이 건네지던 장면과 목소리가 오래된 벽과, 오늘 앉게 된 긴 식탁 위에 아직도 스며 있는 듯했다.
그 말은 단지 영화 속 대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헤밍웨이는 그의 파리 시절 회고록 《A Moveable Feast》에서도 같은 믿음을 담아, 스스로에게 되뇌던 순간들을 적어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은 먼저 딱 하나의 진실한 문장을 써내는 것뿐이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찾아 쓰고자 늘 갈망했으며, 그 한 문장을 써내고 나면 그다음 문장을 이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국내에서는 이 회고록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 《서툰 시절》 등 여러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헤밍웨이 사후에 발간된 이 책은 그가 남긴 미완의 원고를 바탕으로 엮어낸 것으로, 1920년대 초반 파리에서의 생활을 중심에 두고 있다.
실제로 헤밍웨이가 폴리도르 식당을 직접 언급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전해지는 이야기는 주로 식당 측의 주장에 기반한 것으로, 문헌상으로는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헤밍웨이가 자주 드나들던 오데옹 길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Shakespeare and Company)과 뤽상부르 공원, 그리고 거트루드 스타인 살롱(Gertrude Stein Salon) 사이를 자연스레 잇는 길목 주변에 폴리도르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파리 생활 초기에 그가 살던 집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았으니, 이 근방을 오가며 들렸으리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오래된 거리의 흔적들은 나에게도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오래된 시간의 잔향이 기억의 한 장면처럼 이 거리에 겹쳐지는 것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았다.
포크를 들었다 놓는 순간마다 그 오래된 대화의 잔향이 내 접시 위로 내려앉는다. 글의 진실함, 사랑의 진정성, 감정의 비겁함, 간결하고 꾸밈없는 솔직한 문장, 그리고 긴장과 압박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 글이 던지는 물음이, 이 식탁을 통해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 물음들 사이로, 영화 속 헤밍웨이의 대사와 회고록 속 그의 문장들이 겹쳐 건네오는 조용한 말소리가 나를 일깨운다.
글을 쓴다는 일, 살아낸 날을 한 줄로 건져 올린다는 일은, 어쩌면 오늘 점심처럼 담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소박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파리는 대답 대신 이런 자리와 맛, 그리고 침묵을 내어주는 도시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오데옹의 오래된 거리에는 진솔한 문장을 찾아 애쓰던 헤밍웨이의 모습이 가만히 포개져 보인다. 그 여운을 따라 걷다 보니 한 사람의 이름과 한 곳의 주소가 떠오른다.
오데옹 길 12번지.
조금 전 지나쳐 온, 실비아 비치가 문학의 자유를 품고 세웠던 작은 서점.
나는 자연스레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되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