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서 잘 아는 듯해도, 전혀 잘 모른다.
빨간색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져 나온다. 뚜껑 없는 이층 버스엔 <SEOUL CITY TOUR BUS 타이거 버스>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다. 12개 언어로 가이드 설명이 있다며 각양각색의 국기들도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육십 평생 넘게 서울에 살고 있지만, 타본 적도 없거니와 크게 눈길을 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런데 남산에 올랐다가 오늘따라 "저건 뭔 버스지?" 자문하며,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었다.
외국의 큰 도시나 유명관광도시들은 시내 투어를 위해 자유롭게 타고 내리는 이른바 'hop-on, hop-off' 투어버스가 있다. 많은 경우가 빨간색 버스로 2층엔 천장 뚜껑이 없어서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선글라스는 필수이고 게다가 폼나게도 해준다. 요즘 같은 날, 걸어서 가기에 좀 무리다 싶은 관광명소를 찾는 여행객에겐 정말 제격이리라.
외국여행 때 주로 난 '뚜벅이 여행족'이어서, 시티투어버스는 잘 애용하지는 않는 편이다. 언젠가 딱 한번 유럽의 한 도시에서 타보긴 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당연한 얘기인 거 같지만,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런 버스를 잘 모를뿐더러 별로 관심받질 못하는 존재가 시티투어버스일 게다. 자신이 사는 도심을 일부러 관광하거나 탐방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모르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시티투어버스를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별반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해당 도시의 손님인 관광객들은 이 버스를 더 잘 알뿐더러 편리하게 애용할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도 자신의 삶이나 스스로의 모습을 잘 아는 듯해도, 잘 알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늘 접하고 익숙해서 스스로를 아는 듯 하지만, 전혀 알고 있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나에 대해서도 타인들이 더 잘 아는 구석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서도 우리네는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는 모습들 속에는 이방인들이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있겠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만개한 벚꽃은 부는 바람에 춤추듯 너울거리다 떨어져 뒹군다. 떨어진 꽃잎을 대신해 새 이파리가 돋아나 자리 잡고 그 색이 싱그럽다. 노란 개나리도 절반은 파란 이파리로 갈아입었다. 봄의 전달자인 이 나무들은 이렇듯 꽃잎과 이파리 나는 순서가 다른 나무들과 사뭇 다르다. 새순과 잎사귀가 나고서 그다음에야 꽃을 피우는 나무들과 달리 꽃을 먼저 피우고, 꽃이 지고 나서 잎사귀가 뒤덮는 봄의 전달자다.
화사한 꽃이 지고서 푸릇푸릇 싱그러운 이파리가 새로이 솟는다. 싱그러움 뒤에 나타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반대로 화려함이 지고 나서야 싱그러움이 솟아난다. 화려한 꽃이 지고 나서 푸릇한 새싹이 돋듯, 이제 내게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들이 싱그럽길 고대해 보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2022.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