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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제정 100년 (2022. 05. 05.)

by 나름펜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윤석중(1911~2003) 작사, 윤극영(1903~1988) 작곡인 <어린이날 노래>의 일부다. 서울 남산의 푸르른 오월의 신록 사이로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쌀밥 같은 꽃송이의 이팝나무도 눈에 띈다.


어린이날인 오늘 남산 팔각정 주변 풍경은 평소와는 사뭇 좀 다르다. 팔각정 앞 공터에선 간단한 검술과 창술 리허설이 연출되고 있다. 그 옆엔 임시로 설치한 미아보호소 안내 배너와 천막도 눈에 띈다. 팔각정 뒤편 주변으로 도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돗자리를 펴고 이른 점심을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이다. 체육관에서 단체로 온 모양인데, 조금 전 단체로 검술 시범 리허설을 마친 어린이들 같다. 팔각정 앞 광장에 행사용 천막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어린이날 시범 행사가 있을 모양이다.




그땐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어린이날 시범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에겐 아마도 오늘이 훗날 나름의 큰 추억거리로 자리 잡으리라 여긴다. 아쉽게도 내겐 어린이날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큰 추억거리가 없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이내 더듬어본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서인지 내 기억 속의 어린이날 모습은 매우 단편적일 뿐,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학교 운동회 기억이 나긴 하지만, 희미할뿐더러 특별한 기억은 더더욱 아니다. 운동회를 미리 준비하는 예행연습 등은 이상하게도 내겐 귀찮고 피곤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의 어린 나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듯하다. 그런 나에게 어른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어릴 때, 그때가 좋을 때인데, 그걸 모른다고들 하였다. 그땐 그 말이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한참이 지나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더디 가던 시간, 빨리 가는 시간


지금과 달리 어린 시절 그때의 내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만 간다고 여겼다. 그땐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그 시간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건 그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던 거 같다. 그러나 또 언제부터인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느끼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과 세월이 참으로 얄궂게 많이 흘러가버린 모양이다. 그 지나간 시간 속에 수많은 추억과 회한이 모여 쌓이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 자신 '참어른'인지 되돌아보면, 아직도 덜 자란 구석이 많아 보인다. 매년 특히 이맘때가 오면, 새 이파리가 자라듯 나의 마음과 생각이 크게 더 자라길 늘 바란다.




지금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간간이 추억의 편린들은 우리를 기억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넘어온다. 때론 즐거운 모습으로 때론 아쉽고 후회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들 주변을 맴돌다가 또 안타깝게 사라져 버린다. 앨범 속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는 듯하다. 이젠 어느덧 추억을 벗 삼아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져 버렸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엔 회한이 묻어있다.

지금의 시간은 훗날 추억으로 변해서 다시금 나를 회한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엔 지금의 내 생각과 마음도 부쩍 더 자라나 있길 간구한다. 언제나 마음과 생각이 깊고 넓고 크게 자라나는 우리 모두이길 소망한다. (제100회 어린이날, 2022. 05. 05.)


<Post Scrip>

어린이가 ‘존칭’인 줄 몰랐던 당신에게,
《한겨레, (2022.05.04)》 사설.칼럼 [왜냐면] 김규수 | 원광대 명예교수·색동회 이사

전략(前略)

어린이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의 존칭이다. 어린이는 어린아이의 준말이 아니라 사실은, 어린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어린이 반대말은 어른이다. 어린 사람의 존칭은 어린이고, 어른 사람의 존칭은 어르신이다. 젊은 사람을 젊은이라 하고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칭이 아니다.

후략(後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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