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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떠오르는 세 편의 시

청명절 2024. 04. 04.

by 나름펜

4월이면 내 기억의 편린들 사이로 세 편의 시가 떠오른다.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듣게 되는 박목월 시인이 작시한 <사월의 노래>와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난해하게 처음 만났던 T. S. 엘리엇의 <황무지> 그리고 '4.19 시인'으로 평가되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그것이다.




황무지


1922년 모더니즘 시인 엘리엇(T.S. Eliot, 1888~1965)은 "20세기 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황무지(The Waste Land)>를 발표한다. 나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교복을 한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다. 이 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의 정신적 상황과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자 했다는 설명으로 알려져 있는 데, 아마도 나도 그렇게 배웠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시험문제에도 자주 등장했고, 이 시는 내겐 꽤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434줄의 긴 시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그 첫 행의 시작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만이 내 기억 속에 짙게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4월이 되면 으레 이 싯귀절은 까닭 없이 떠오르며 귓전에 맴돈다. 특히 우연히라도 4월에 뭔가 복잡하고 힘든 일들이 닥칠 때면 더욱 그렇다.


4월의 노래


<4월의 노래>는 목련이 피는 빛나는 꿈의 계절 4월이면 으레 듣게 되고 따라 부르게 되는 가곡이기도 하다.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봄에 박목월 작시에 김순애가 작곡을 한 가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다. 시인이 소녀들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만든 시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의 시어(詩語)들은 어렴풋한 젊은 시절의 추억들을 내게 소환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자신의 느낌으로 4월을 맞이하며 감회에 젖게 된다. 그럼에도 서정적 낭만적인 4월을 느끼기에 제격인 노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후략)

《4월의 노래》작시: 박목월(1915~1978), 작곡: 김순애(1920~2007)

껍데기는 가라


4월에 맞는 봄은 낭만과 서정과 함께 우리로 하여금 4.19 혁명이라는 역사적 시대적 사건을 마주 서게 한다.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젊은 나이인 1969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1960년 4월에 '학생혁명시집'을 편찬하며 4.19 혁명에 온몸으로 뛰어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를 '4.19 시인'으로 평하기도 한다. 훗날 4.19 혁명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정신을 기리는 <껍데기는 가라>를 창작한다. 이 시는 역사와 현실 그리고 우리들의 위선과 허위 그리고 허구와 기만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폐부를 울리는 간결하고 직설적인 시 제목과 함께 이어지는 첫 행의 시구절은 침잠한 나를 일깨운다. 이 시는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던 모두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시대의 대표적 참여시요, 저항시로 지금까지 많이 인용되며 회자되는 시다. 이 시를 대하면 언제나 움찔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통시대적으로 영혼과 마음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중략)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신동엽(1931~1969)



4월이면 떠오르는 내 기억 속의 시 세 편을 나는 언제나 내 나름대로 읊조리곤 한다.

"4월은 잔인한 달,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껍데기는 가라!"

봄의 절기 중 청명(淸明)은 하늘이 점점 맑아진다는 말 그대로 좋은 절기의 날이다.

(2024.04.04.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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