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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 시간문화

단일시간(모노크로닉 타임)과 복합시간(폴리크로닉 타임)

by 나름펜

글로벌화(globalization)는 우리에게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그 의미와 뉘앙스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 Marshall McLuhan(1911~1980)의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표현은 이미 모두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화적 다양성의 공존'이라든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컫는 '문화간 의사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은 바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한 초등학교의 러시아어 동시통역 입학식과 8개 언어로 번역되는 홈페이지 구성이 화제를 모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다문화 학생’ 수가 올해 20만 명을 넘어 전체 학생 중 4%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 속에서 '다문화 현상'은 점차 더 빨리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일상에서 외국 문화권 사람과의 교류나 접촉이 날로 빈번해짐에 따라, 이제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음미해 봄직하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Edward T. Hall)에 따르면, 시간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지만, 시간을 인식하는 체계나 관념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단일시간(monochronic time: M-time)과 복합시간(polychronic time: P-time)이 그것이다. 국제 비즈니스는 물론 '문화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에서 중요한 것이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인식체계의 개념이다.




모노크로닉 타임(Monochonic Time, 단일시간)


모노크로닉 타임(단일시간)이란 "한 번에 한 가지 일(one thing at a time)"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단일시간문화에서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길로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 '선형적(linear)'으로 본다. 시간은 세분화되고, 스케줄화 되며 일의 우선순위가 매겨져서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서 한다. 단일시간문화에서는 시간은 만져질 수 있는(tangible) 실체적 대상이고 ‘’으로 환산해서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라는 것은 흔히 ‘소비했다’, ‘벌었다’, ‘낭비했다’ 또는 ‘잃어버렸다’ 등이 될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시간문화 속의 사람들은 하고 있는 일이 중간중간 자꾸 끊기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단일시간문화는 미국인, 독일인, 스위스인, 스칸디나비아인 대부분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해방 이후 미국식 사고방식이 적극 유입되면서 이런 단일시간(모노크로닉 타임) 문화경향이 사회에 유입되기 시작한 듯하다. "시간은 돈이다"란 표현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는 복합시간(폴리크로닉 타임) 문화의 시간관념 그리고 이에 따른 인간관계 방식이나 일처리 방식에 있어서의 생각과 관념체계가 다르다고 하겠다.




폴리크로닉 타임(Polychonic Time, 복합시간)


반면에 폴리크로닉 타임(복합시간)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many things at once)"을 하는 스타일이다. 복합시간 문화는 모노크로닉 타임(단일시간) 문화가 '시간을 하나의 선(線, line)'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시간을 하나의 총체"로 보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그때그때 발생된 일을 중요시 여기는데, 이런 문화권에서는 '일에 포함된 사람'을 더 중시 여기기 때문이다.

복합시간문화는 스케줄을 고수하기보다는 일을 포함한 인간의 상호교류성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북미의 경우엔 아메리카 인디언, 터키와 아랍인들 그리고 스페인과 남미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라틴계열 나라 국민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자 Hall은 아시아계통 국가에 대한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고 있진 않으나, 아시아 국가의 경우 대부분 전통적으로는 복합시간문화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단일시간 문화는 시간을 선(線, line)으로 마치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기 때문에 스케줄이나 회의안건 등에 있어서 중요도에 따라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하고, 시간이 모자라면 나중 것들은 생략하고 그냥 끝내기도 한다.

복합시간 문화는 시간과 얽힌 사람을 중시하기 때문에 중요도나 순서보다 그때그때 발생한 일들이 모두 다 소중하다고 여긴다. 이는 시간과 함께 얽혀있는 인간의 상호교류성에 큰 무게를 두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사람주의, 인본주의가 저간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적 시간문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전통적인 예전의 시간문화 체계는 복합시간문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네의 경우 사무실에 아무 때나 방문하여도, 그냥 내치지 않고 일단은 맞이하는 태도를 보인다. 서양의 경우 일반적으론 약속된 방문이나 미팅이 아닌 경우의 일방적인 방문은 일반적으로 결례다(잘 아는 매우 친숙한 사이는 서양도 예외지만).

복합시간(폴리크로닉 타임) 문화에서는 시간 속에 얽힌 사람의 상호교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삐 가던 발걸음이라도을 잠시 멈추고 밥은 먹었는지, 근황을 주고받고 나서야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다시 보자고,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음에 보잔다고 해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닌 그냥 인사치레다. 우린 다 아는 맥락인데, 외국사람은 알 턱이 없다. 외국사람은 어쩌면 연락을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아무 연락 없는데, 이걸 가지고 믿을 수 없는 사람, 신용이 없다 혹은 거짓말만 늘어 논다고 충분히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화의 차이이고 다름이고 사용하는 일종의 소통 양식의 차이인 셈이지, 어떠한 계획된 의도가 아닌 셈이다.


이해하며 소통하기


문화는 어떤 가치나 행동양식에 대한 선호이고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하나의 동일한 국가문화권에서는 같은 행동양식을 함이 바람직하다. 그건 암묵적으로 해당 사회에서 약속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고,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이를 습득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간의 소위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은 이래서 어려운 셈이다. 비단 언어가 달라서만의 문제가 아니고,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같은 문화권 사람 간에도 어려운 게 커뮤니케이션이고 소통인데 거기에 문화가 다른 사람과는 오죽하겠는가. 5월 21일은 국제연합(UN)이 정한 "대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World Day for Cultural Diversity for Dialogue and Development)"이다.

다양한 문화 공존의 시대에는 비즈니스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더욱 세심히 상대방을 이해하며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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