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허공을 수놓으며 흩날리던 연분홍의 벚꽃 잎이 없다. 바람에 어지럽게끔 날리는 벚꽃 잎을 잡아보려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질 않는다. 지난 얼마간의 시간 사이에 노란 개나리도 연분홍 벚꽃도 모두 지고, 푸르른 잎사귀로 바뀌어 있다. 서울 남산 전체가 녹음의 잔물결들로 넘실댄다.
그새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남산 N서울타워 옆과 팔각정 주변에서는 서울 시내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올라오느라 약간 거칠어진 숨을 돌리며, 서울 시내를 무심히 바라본다. 난간에는 이른바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히 채워져 매달려 있다. 남산 팔각정 근처 난간도 사랑의 자물쇠는 언제부터였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젠 차고 넘쳐나 빈 곳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그 옆에선 어김없이 가족, 친구, 연인들이 오늘도 사진들을 찍는 모습이다.
파리 센강(la Seine) 위엔 37개의 다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내게 특히 정감을 느끼게 하는 다리가 차 없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뽕데자흐(Pont des Arts)’, 이른바 '예술의 다리'다. 그 다리 위론 행인, 관광객, 연인들, 길거리 연주나 공연 등으로 붐비기도 한다. 제법 오래전 파리 여행방문 때 이 ‘예술의 다리’를 건너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예술의 다리' 난간에도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했다. 예전 파리 유학 시절 당시에는 전혀 없었던 사랑의 자물쇠가 예술의 다리 난간을 점령한 사실에 자못 놀랬었다.
그리곤 이내 이런 것도 세계적인 현상인가라는 생각과 아울러 근데 이건 전혀 내가 아는 프랑스답지는 않은 모습이라고 여긴 적이 있다. 그 이후 '예술의 다리' 난간의 '사랑의 자물쇠'는 이런저런 안전상의 논란과 더불어 결국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저기 보이는 '사랑의 자물쇠'의 주인공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들 지내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알 수도 없을 것에 대한 괜한 궁금증이 새삼스럽다. 그 당시 어떤 바람이었건, 간절함이었건, 기념이었건, 재미 삼아서든 사랑의 자물쇠를 남기고 간 사람들. 아마도 저 사랑의 자물쇠에는 그 수만큼이나 수많은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모르는 이들의 과거 모습과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남겨져 매달려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되는 시간의 굴레 속에 우리는 남겨진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간 속에 자기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다. 각자 나름의 '삶의 서사'가 있는 그 시간들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은 흘러간다고들 한다. 그 흐르는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과거, 현재, 미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는 현재에 있다. 과거는 흘러가서 없기도 하지만, 존재하기도 한다. 과거는 가버리고 없어졌지만, 과거는 지금의 현재에 내재(內在)해 있다.
그러면, 미래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래는 현재의 기대와 선택에 있다. 우리들의 장래는 미래에 대한 어떤 바람과 기대하는 바에 있다. 그리고 그 기대하며 그리는 모습으로 가기 위한 어떤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우리의 기대와 선택이 우리가 그리는 우리의 장래이자 미래가 될 것이다. 스스로가 기대하며 그리는 바가 미래로 자신을 이끈다. 현재의 선택이 곧 미래인 셈이다. 현재의 기대와 선택으로 그려지는 미래는 어느새 현재로 실존(實存)하게 되고, 과거가 되어 현재에 속에 스며 있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에 내재되어 있고, 미래는 현재의 기대와 선택에 있다."
시간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