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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골프와 인생

by 최코치

내가 어릴 적에는 골프와 스키는 고급 스포츠였다.


가끔 TV에서나 볼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이를 즐긴다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특히, 내가 살던 곳은 따뜻한 남쪽, 부산이었기 때문에 스키는 먼 나라 스포츠였다. 과거에는 남쪽 지방은 겨울에도 눈이 내리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들을 통해 스케이트나 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살림살이들이 나아지면서 스키는 그리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고, 최근에는 골프도 젊은 사람들도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꽤나 대중적인 스포츠가 된 것 같다. 나도 회사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해서 임원시절 제법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골프 : 좀처럼 곁을 내어 주지 않는 밀당의 천재

구력이 한 십 년을 넘기면서 골프라는 운동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동안 들인 노력으로 실력도 제법 늘고, 그러다보니 심적으로도 조금은 여유가 생겨 라운딩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렵다는 '깨백(평균타수가 최초로 100개 미만으로 들어 옴)'을 한 후, '보기 플레이어(평균 타수 90대 수준)'를 거쳐 드디어 평균 타수 80대 수준으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골프는 이틀 연속, 두 주 연속 같은 점수를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친구였다. 하루는 뿌듯함과 자신감을 주었다가, 바로 다음날은 좌절감과 겸손함을 주는, 정말 말 그대로 까칠함이 철철 넘치는 존재였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자전거, 수영, 축구, 배구, 농구 등 대부분의 운동은 한동안 하지 않다가도 전혀 문제없이 즐길 수가 있다. 처음 배웠을 때의 그 자세 그대로, 오히려 경력이 길어지면 질수록 더 안정되고 세련되지는 반면, 골프는 하루를 쉬어도 무언가 문제가 생기는 정말 어려운 운동이다.



골프는 인생이다

이처럼 골프에 대한 환희와 좌절이 반복이 되며 급기야 "골프는 인생이다."라는 성찰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얼마전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결혼기념 여행 겸 골프를 치러 다녀왔다. 아내도 '보기 플레이어'로 곧 잘치는 수준인데, 두 사람 다, 역시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골프의 어려운 문턱을 또 한 번 느끼고 돌아오게 된 것 같다.


제주 해비치 cc


골프와 인생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1. 자연과 함께 한다.


골프는 도심과 일상을 벗어나 푸른 자연 속에서 하는 운동으로 심신을 맑게 해 준다. 그렇다 보니, 함께 라운딩 하는 사람들끼리는 평소 어렵기만 한 일들이 쉽게 풀어진다. 누구도 푸른 자연 속에서 감정을 부리거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이입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상에서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라. 세상에 어렵기만 하고 풀리지 않는 일은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2. 예절이 중요하다.


골프에는 수많은 에티켓들이 있다. '고급 매너 스포츠'인 것이다. 티 박스 위에서, 그린 위에서... 지켜야 할 수많은 예절이 있고, 이를 간과하거나 놓치는 경우 상당히 사람됨에 손상을 받을 수 있다. 공이 안맞기 시작하면서 무너지는 멘탈을 부여 잡고, 얼굴에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경기하여야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생에서의 이치와 비슷하다.


3. 힘이 들어가면 망한다.


골프 스윙은 매우 과학적이다. 신기하게도 잘 치려고 몸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스윙은 망가진다. 골프의 구력은 몸에서 힘을 빼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서도 욕심을 부리고, 과하게 잘해보겠다고 무리하면 일이 오히려 꼬이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항상 비우는 마음자세로, 또한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자세로 삶을 대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4. 부지런해야 한다.


골프는 보통 아침 일찍부터 장거리를 운전해서 가야 하고, 사전에 준비할 것도 적지 않다. 라운딩 중에는 카트를 타기도 하지만, 내 공을 쫓아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 한다. 다른 동반자들의 진행 속도를 고려하면서 너무 뒤처지거나 앞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늘 주변을 살펴야 한다. 평소 지속적인 연습은 필수다. 이 모든 것이 인생 사는 것과 비교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똑같다.


5.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


직업으로 골프를 하는 프로들도 늘 기복이 있다. 단, 한 번의 라운딩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기는 없을 것이다. 아마추어인 우리는 더 할 것도 없이 늘 최선을 다하지만 성적은 기복이 심하다. 결과에 따라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늘 멀리 보고, 그날 그날의 단기적 결과에는 순응해야 하는 것이 골프라는 운동이다. '내일은, 다음에는 좋아지겠지'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인생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한 능력, 바로 '성찰의 힘'이다. 골프에서 느끼는 매력이 커져갈수록 나의 삶에 대해 느끼는 맛 또한 깊어지고 진해져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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