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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도심 속의 전통시장

by 최코치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곳 : 추억의 장소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다니던 시장은 어린 두 눈엔 '신천지(新天地)'였다.


요즘처럼 인스턴트 푸드나 풍성한 간식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시장은 어린 나의 눈과 귀, 코의 감각을 극대값으로 활성화시키면서, 심장박동 또한 최대치로 올려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던 곳이다. 집에서는 먹기 힘들었던 온갖 음식과 식재료, 주전부리... 동화책에서 읽었던 임금님 수라상이 내 눈앞에 펼쳐진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떠오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대부분 "너무~ 비싸다... 좀 싸게 주세요..."의 일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비쌌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유, 남는 것도 없다... 그렇게 가져가세요..." 맞받아주던 상인 아주머니의 반응과 완성되면, 이들의 대화는 '흥정'이라기보다, '인정(人情)의 상호작용', '세상 사는 맛을 느끼는 과정'으로 이해가 된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살던 동네는 시장과 인접해서 나는 시장에 자주 갔었던 것 같다. 엄마 없이 혼자서도 갔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경유하는 장소 중 하나가 되기도 했었다. 시장 어귀에는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이 있었는데, 이 집은 시장에서 나의 최애(最愛) 장소였다. 늘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가게 안을 메우고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나의 코를 잡아끌기에 충분했었다. 싱싱한 생선살을 갈아 바로 만들어 그 자리에서 맛보는 따끈한 어묵 맛은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가끔 시장을 들릴 일이 있을 때는 나는 어묵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삶의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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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내도 시장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대형마트, 창고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경우도 많지만, 간단한 식재료는 시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아내의 경우에는 소량의 물건이지만, 싱싱하고 질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시장을 즐겨 찾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시장에서 두 가지를 느끼고,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첫째는, 어릴 적 추억이다. 무의식에 잠재된 그 기억과 느낌이 시장을 찾으면 새록새록 올라오기 때문에 그 느낌을 즐기려 시장을 찾는다. 둘째는, 삶의 활력과 생동감을 느끼기에 시장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상인의 호객하는 소리, 여기저기 흥정하는 소리, 짐을 실은 분들이 지나가며 외치는 고함 소리... 어느 목소리도 우울하거나 처져 있는 것이 없다.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최근 시장은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단순한 '경제행위의 장(場)'을 떠나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마음 단련의 장(場)'인 것은 여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잠깐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세월을 한결같이 살아오신 상인들의 인생을 떠올리며 '배부르고 게으른 나'를 질책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저분들의 일상과 인생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데... 부끄럽다... '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 잡는다.





도심 속의 전통 시장 : 일상의 성찰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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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아파트 근처에도 큰 전통시장이 있다. 아내랑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장을 보러 간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장이 있어 주변이 지저분해질 수 있으니, 고급 아파트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글쎄... 정답은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각박한 콘크리트 숲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메말라 가는 나의 멘털에 촉촉한 습기를 유지해 줄 수 있는 곳이 시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하고, 상인분들을 보면서도 좀 더 겸허해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도 하고, 한참을 줄 서서 산 뜨거운 호떡 하나를 호호 불면서 먹으면서도 잠깐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기도 하고...


도심 속의 전통 시장... 일상에서의 성찰의 도량(道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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