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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찰을 돕는 책 I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루퍼트 스파이라>

by 최코치
BEING AWARE OF BEING AWARE


저자 루퍼트 스파이라는 세계적인 도예가(陶藝家)로 명성을 떨쳤다. 영국의 유명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들을 영구 컬렉션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에 올 때 대통령에게 줄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이 바로 루퍼트 스파이라의 도예 작품이었다. 이제는 작품 활동을 접고, 명상 지도에만 전념하고 있다.


옮긴 이 김주환교수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우리에게는 '내면소통', '명상', '회복탄력성' 등으로 유명한 분이다.


'알아차림(Awareness)'은 남방불교의 '삿띠(Sati)'가 서방으로 전해져 한동안 '마음챙김(Mindfullness)' 으로 번역되어 사용되던 것이 최근에 '알아차림(Awareness)'으로 개념이 바로 잡힌 것이라 알려져 있다.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빌자면, '스스로 자기를 살펴 깨닫는 것, 즉 판단 없이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을 살펴서 깨닫는 것'을 말한다.


'알아차림'은 또,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 Therapy)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 '화가 난다', 또는 '열받는다'라고 말할 경우, 이는 지금 화가 난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데 반해,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알아차림을 통해 '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지금 나에게 화가 올라오고 있구나'라고 화가 난 감정과 나를 분리하여 인지하게 함으로써 치료나 해결이 가능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버릴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현재 명상 전문가인 저자 루퍼트 스파이라는 이 책에서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면이 없지 않은 내용이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는 단순하여 나에게 울림을 전해 주는 점이 있었다.


그는 명상은 특별한 깨달음이나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진정한 행복은 '대상적 경험(Objective Experience)'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온전한 평온함과 진정한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우리는 늘 알아차림을 알고 있으나, 주의를 '대상적 경험'에 집중하느라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알아차림 자체가 '진짜 나'이다."


나의 해석으로 풀어보면, 우리가 명상을 하는 것은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나'가 아닌 모든 것들을 걷어 내고, '나'에 도달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덧입고 있는 온갖 사회적 정체성으로 인해 생겨난 일과 사건들,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인지하는 온갖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을 다 걷어 내고 나면 진정한 '나'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나'로 이것들을 다시 바라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더 나아가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여 그 '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어려운 경지의 개념들이라 함부로 글로 적기는 적절하지 않은 듯 하지만, 어쨌든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성찰을 통한 삶의 평온함과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분들은 어렵지만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책이라 권해 드리고 싶다. 아래는 좋아하는 단락을 인용하여 요약해 보았다.


주먹을 쥐려면 처음에는 애를 써야 하지요. 하지만 주먹을 쥔 상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주먹을 쥔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손을 펴려고 한다면, 손을 펴기 위해서 또다시 애를 써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주먹을 쥐고 있는 상태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손을 펴려면 애를 써야만 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손을 편안하게 이완하여 편 상태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손을 펴기 위해 새롭게 애를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 주먹을 쥐고 있느라 계속 애를 쓰고 있던 것이지, 손을 펴기 위해서 새롭게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인 자아는 '에고'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상태와도 같습니다. 무한한 알아차림을 외관상 유한한 마음으로 축소해 버린 상태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별적인 자아에 내재한 긴장 상태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게 원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알아차림 안에서 알아차림으로 쉬기 위해서 오히려 애를 써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알아차림이라는 우리의 본질이 드러난다면, 알아차림으로 돌아가거나 알아차림에 머물기 위해서 어떠한 애를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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