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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추억과 음식이 만나는 곳

by 최코치
최애(最愛) 음식은 추억을 담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음식을 가림이 없이 잘 먹는 나에게도 유독 '식탐'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최애(最愛) 음식' 몇 가지가 있다.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밀면, 얼음을 간 옛날 팥빙수, 계란을 입힌 분홍 소시지, 동그란 찜기에 흰 면포를 깔고 찐 찐만두 등이다. 잠깐 이름을 쓰고 있노라니, 이내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밀면 1.jpg 밀면
옛날 팥빙수.jpg 옛날 팥빙수
분홍소시지.jpg 분홍 소시지
찐만두.jpg 찐만두


그런데, 이 음식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어릴 적 추억이 한껏 담겨 있다는 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에 무척이나 나를 데리고 돌아다니셨던 기억이 선하다. 야구, 축구도 보러 다니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목욕탕으로, 별 일 없이도 그냥 이 것들을 먹으러... 참 많이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서 일상에도 가끔 먹으려 해 보지만, 부산 고향집에 내려갈 때는 거의 의무적으로 이 음식들을 찾아가는 나를 나 스스로가 재미있어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코칭 관련 업무로 부산을 내려가면서 본가에 들러 어머니도 뵙고 왔지만, 어김없이 밀면 한 그릇을 먹고 왔기에 아주 알찬 부산 출장이 된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 밀면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 평안도에서 살던 수많은 분들이 전쟁의 화마를 피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부산까지 내려오셔서 터전을 잡고 장사로 생계를 이어 나가시는 과정에 고향에서 먹었던 냉면의 향수를 달래려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밀면이다.


밀면은 냉면과 오묘하게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특유의 향도 있고, 면도 메밀의 식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부산 3대 밀면이니, 5대 밀면이니 하면서, 오래되고 유명한 노포의 맛집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나의 성장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아버지와의 추억의 삼분의 일이 이 밀면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밀면 마니아들이었다.


이번에 들린 유명 밀면집도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자주 들렀던 곳으로 혼자 가게를 들어가면서도 왠지 모를 아버지의 기억과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옛날 팥빙수 또한 두말하면 서러운 아버지와 나의 최애 음식이었다. 요즘처럼 우유가 아니라 그냥 큰 얼음을 갈아 약간의 연유와 직접 쑨 단팥죽을 듬뿍 넣은 옛날 그대로의 팥빙수를 우유를 부어가면서 마치 슬러시처럼 먹는 우리 두 사람의 방식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입 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가끔 와이프, 애들이랑 빙수를 먹을 때 우유를 부어서 먹는 이 방식으로 먹을라치면 난 구박덩어리가 되곤 한다. 팥빙수 먹을 줄 모른다고... 사실은 자기들이 그 맛을 모르는 건데 말이다...


중년의 남자들이 갑자기 어린애가 되고 마는 계란을 입힌 분홍 소시지... 회사 급식 때 나오면 아저씨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수북이 쌓아 간다. 모처럼 식탐을 부리는 것이다. 말해 뭐 하겠나? 이 분홍 소시지는 우리 어릴 때 가장 인기 있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사실 커서 먹어 본 분홍 소시지는 맛있는 햄에 익숙한 입맛에 그리 맛이 느껴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밀가루 맛이 많이 난다고 할까? 하지만 우리는 소시지를 먹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학창 시절의 추억과 감정을 먹는 것이기에 식탐을 한 껏 부리게 되는 것이다.



추억의 음식, 감정을 먹는다...

궁금해졌다. 유독 나만 이처럼 어릴 때 먹던 음식들을 지금도 최애 음식으로 좋아하는 것일지가.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은 어릴 때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걸까?

ChatGPT의 말:

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이 어릴 때의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 뇌과학, 심지어 진화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감정과 연결된 기억

어릴 때 특정 음식을 먹으며 느꼈던 감정—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저녁, 특별한 날 먹은 음식, 위로받았던 순간 등—이 뇌에 강하게 각인됩니다. 이 기억은 감정 중추인 **편도체(amygdala)**와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hippocampus)**에서 연결되며, 그 음식이 단순한 맛을 넘어서 정서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2. 향과 맛의 기억은 오래간다

맛(taste)과 향(smell)은 다른 감각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편입니다. 이것은 후각이 뇌의 원시적인 부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자주 맡거나 먹었던 음식의 향이나 맛은 나중에 다시 접했을 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3. 습관 형성

어릴 때 자주 먹던 음식은 익숙함(familiarity) 때문에 좋아지기 쉽습니다. 이는 진화적으로도 안전한 음식(익숙한 것)을 선호하도록 인간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4. 사회적·문화적 영향

가정의 식습관이나 문화적 배경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된장찌개, 김치, 떡볶이 같은 음식을 자주 먹으며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음식에 친밀감과 애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시:

어릴 때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된장국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이유는, 단순히 맛이 아닌 ‘할머니의 사랑’과 ‘안정감’이 함께 기억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인간의 기억은 감정과 연결된 기억이 오래 지속되고,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바로 어릴 적 좋은 감정, 좋은 기억과 함께 먹었던 특정 음식들은 기억하고자 하는 그 감정을 떠 올리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이 담고 있는 옛날의 그 감정을 떠 올리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밀면을 먹고 싶거나 팥빙수에 우유를 부어 먹는 것이 맛있어서라기보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의 시간, 그때의 감정과 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문득, 오늘따라 아버지가 많이 생각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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