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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성찰을 돕는 책 III

- 켄 윌버 <무경계>

by 최코치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았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평생을 바쳐 몰두해 온 사람이 바로 켄 윌버(Ken Wilber)이다. 그는 서양의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동양의 종교와 명상 전통을 아우르며, 인간 의식의 지도를 그려낸 통합사상가이다.


저서 <무경계>는 켄 윌버가 1970년대에 집필한 책으로, 동서양의 여러 심리 치료와 의식 성장 기법을 하나의 의식 스펙트럼으로 통합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부터 칼 융, 존재주의 심리학, 게슈탈트 치료, 명상과 선(禪)에 이르는 다양한 접근을 한 데 묶어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경계 때문에 자신과 타인,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고통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 '경계'

<무경계>를 읽는 경험은 곧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과정과도 같다. 윌버의 통찰들은 단순한 지적(知的) 개념들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자기 나름의 '경계'를 통해 바라보고 해석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경계를 통해 변형된 존재인 것이다.


1704496314913.jpg?type=w580 에드가 루빈의 항아리


위 그림은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Edgar Rubin)의 항아리라는 작품으로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어느 색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람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항아리가 보이기도 한다. 즉,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경계로 이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무경계>에서 이야기하는 경계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실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그는 경계가 현실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구분·분류하기 위해 그은 ‘지도(Map)’ 위에서만 존재한다고 본다.


2. 대립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기제


경계를 그은 순간, 우리는 ‘안 vs 밖’, ‘선 vs 악’, ‘주체 vs 객체’ 같은 대립항을 만들어 우리의 내면과 외부, 또는 서로 다른 개념 사이에 갈등을 발생시킨다.


거장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에서 밝고 건강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이로 인해 선과 악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전학생 막스 데미안을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하여 독립적 사고를 하는 존재로 성찰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3. 통합 의식에서 해체될 수 있는 환상


경계는 본래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합일의식(Unity Consciousness)’을 통해 이러한 분리를 넘어서면 경계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경계를 넘어 삶으로

삶에 대한 성찰적 태도란 무엇일까? <무경계>는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다.


자신을 고립시키던 경계를 지우고,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 끊임없이 현재를 자각하며 매 순간을 깨달음의 표현으로 여기는 것, 바로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내면의 분열이 치유될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벽을 허물고 공감과 조화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삶과 죽음, 행복과 고통의 이중성조차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켄 윌버는 성장이나 깨달음은 어디 먼 곳으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진실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 가깝다고 하였다. 명상이 추구하는 것, 내면의 존재 Higher Self로 살아가는 것,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무아의 경지(無我之境)... 이 모든 것들이 맥을 같이하는 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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