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바닥에 신발을 질질 끌고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쓱쓱 걸어 다닌다. 엄마는 신발 닳는다고 내 뒷모습을 보며 잔소리하신다. 하지만 먼지바람 일으키기는 재미있다. 엄마가 보고 있을 때까지는 잘 걷다가,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내 발걸음은 또다시 바뀐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 시골 소녀였다. 시골 소녀에게 곤충과 각종 벌레들은 장난감이다.
그 중 개미는 가장 만만한 놀잇감이다. 작고, 쉽게 찾을 수 있고, 가장 중요한!!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걷다 발견한 개미떼를 보고 털썩 주저앉는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가는지 괜히 못살게 굴고 싶어 진다. 작은 자갈 하나 골라 개미 앞에 떡하니 내려놓는다. 개미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 그러다 옆길로 세면, 또 돌을 가져와 막는다. 그렇게 개미가 오도 가도 못하게 막으며 한참을 논다.
옛날 내가 살던 동네에는 비가 오면 물 웅덩이가 많이 생기는 울퉁불퉁 흙길이었다.
비 온 뒤 개미를 만나면 또 다른 놀거리가 생긴다. 개미를 수영시켜 주겠다는 장난기 가득한 마음으로 개미 한 마리 두 마리를 흙탕물 속에 풍덩! 집어넣는다. 아무런 죄책감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한다는 생각은 8살쯤 된 시골 소녀에게는 없다.
그런 소녀가 어느덧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자기를 쏙 빼닮아, 길에 있는 개미를 보며 장난을 친다. 이제는 그 장난을 '괴롭힘'이라고 이름 짓는다.
한참 동안 아이 행동을 바라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듯 동질감이 느껴진다. 개미 좀 어떻게 한다고 생명을 소중히 못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요. 그저 평범한 보통 어른으로 나도 자랐는데... 하며 아이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만 본다. 이내 머리를 도리도리 돌린다.
이제 나는 버젓이 부모가 되었잖아? 책도 많이 읽었잖아? 하찮은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자신이 어렸을 때 했던 행동은 뒤로 한채.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생명은 소중하단다. 이렇게 작은 생명도 가족이 있어. 네가 개미라고 생각해봐~ 얼마나 괴롭고, 슬프니~"
너무 거창하게 말했다.
자기 어릴 적 생각은 안 하고, 이제는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혼란스럽다.
아이에게 요구하는 수많은 규칙들 내 어린 시절은 그랬었나 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은 그 시절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대강 머릿속을 정리하고 오늘도 아이에게 좋은 규칙만을 고집하고, 모범생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되면 아니, 서른 살쯤 되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겠지?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겠지? 지금 부끄러운 행동도 그때는 당당히 하겠지? 하며 어른이 된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30살이 되어도 40살이 되어도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도 어린 시절 그때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어른이 된다고 답을 척척 내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수많은 상황 속에서 가장 좋은 대안을 내놓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가는 '내가'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