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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공간

by 우상권

1999년의 끝자락에 나는 수능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비참했다. 더할나위 없이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고 미친듯이 달려온 지난 몇년이 한순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수능시험을 치르기전 마지막 모의고사가 내생에 최고점이라는 자만에 빠지기 딱 쉬운 상황이라 그런지 수능결과는 더욱 절망에 가까웠다.어린아이가 애써만든 도미노가 지나가는 거센 바람으로 부터 한번에 쓰러져가는 기분이었고, 옷으로 나의 살찐 모습을 가릴 수 있었지만 마치 대중목욕탕에서 모든것이 드러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즉, 나의 실력과 본연의 모습이 숨길 수 없이 모두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수능결과에 대한 좌절을 잠시 잊은채 우연히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는곳에 구경을 갔었다. 대구 동성로 골목안 작은 신발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를 보러갔다. 친구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을 보고 처음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한참서서 구경하다 친구가 일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 당시 수능을 치른 모든 학생들은 한순간 백수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19년의 긴시간을 지나 마지막 관문인 대학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마치 자신이 어른이 된것마냥 자유를 만끽해야한다는 어설픈 권리를 되찾으려고 모두가 애썼다..

그 중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친구도 있었고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친구가 일하는 동성로 골목안 신발가게 사장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주변 일터를 소개시켜 주셨다.. 그렇게 나는 장사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 하게 되었다..나는 어릴적 편모가정에서 자라났다..6살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는 홀로 4남매를 책임지며 사셨다. 초등학교때 일이다. 새학년이 되면 빠지지않는 관문이 있었다. 바로 호구조사였다.. 아버지가 있는지? 어머니가 있는지? 식구는 몇명인지? 심지어 집에 텔레비젼이 있는지까지 조사를 했다.. 지금생각하면 참 요상한 일이다. 새학기가 되어 아이들에게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지..혹여나 편모, 편부의 가정에 사는 아이들에게 한쪽 부모님의 부재를 부각시키며 수치심을 자극시켰다.. 나또한 편모가정의 막내아들이라 새학기가 되면 늘 마음 조리며 수치심을 예고한듯 불안해지곤 했다. 그때 새겨진 가슴의 기억이 참 오랜시간동안 남아 있는것 같다. 지금도 3월의 봄 새학기가 되면 늘 한쪽 가슴이 이유없이 두근거리곤 한다. 여하튼 나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19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장사이야기를 이어간다면..참 신기한 일이었다..유일하게 장사의 공간만큼은 나에게 학력이나 부모의 부재나 집안 형편을 묻지 않았다..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나의 삶의 배경이 고객님에게는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닌것이었다..오직 지금 고객님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주고 친절하게 응대만 한다면 기꺼이 고맙다는 따뜻한 격려와함께 물건을 구매하셨다..앗! 드디어 찾았다..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공간을..바로 장사를 하는 이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공간인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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