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 하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새로운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시골 성주에서 도시로 이사온 곳은 대구서구 평리동 이었다. 그곳은 대구광역시 전체 중 가장 평균 소득이 낮은 동네였다. 쉽게 말해 대구에서 가장 삶의 수준이 낮은 곳이라는 뜻이다. 내가 살던 동네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다른 동네에 비하면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었고 지하철이 없고 학군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대부분이 언덕을 걸치고 있는 달동네 같은 주택 촌이었다. 중학교까지는 평리 동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진학은 운이 좋게도 그 당시 학부모님들이 대구 수성구에만 몰려있던 좋은 학교들에는 그 동네 거주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진학 기회의 시스템에 거센 불만운동이 일어난 덕분에 그해의 진학시스템 만큼은 랜덤으로 추첨하여 여러 동네에서 골고루 대구최고의 학군인 수성구 학교에 진학하게 하였다. 그 흐름에 덩달아 나도 청구 고등학교라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수가 있었다. 등교시간이 되면 교문 앞으로 수입차가 즐비하게 줄서있었고 능력 있는 부모의 손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이 하나둘씩 차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되면 고급 식당에서 고급 포장지에 정성껏 포장된 도시락이 교실로 배달이 되었고 늘 같은 반찬에 밥만 가득 싸오던 나의 도시락과는 차원이 다른 진수성찬을 매일같이 수성구 엘리트 아이들은 식사를 했다. 수업시간이 되면 특설반이 있어서 수성구아이들과 평리동의 아이들의 수준차이가 너무나 컸기에 반을 따로 나위어서 수업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 자율학습이 되어서야 떠돌이 수업을 마치고 나의 교실로 돌아 올수가 있었다.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나의 성격에 나는 늘 대화가 없었고 친구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늘 침묵을 유지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와 조금 있으면 체육대회가 있으니 참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시간만큼은 존재감이 있었던 나를 장거리 1500m 선수로 추천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체육대회날이 되었고 나는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작은 운동장 7바퀴 반을 도는 경기였는데 3바퀴째까지 1등으로 거세게 달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힘이 빠졌지만 7바퀴째 까지만 해도 1등으로 달리고 있었고 2등과는 꾀나 차이가 있어서 1등에 확신을 가지고 뛰고있는 순간 결승전 5m를 앞두고 누군가 빠르게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결국 역전을 당해서 2등으로 결승전을 통과 했다. 너무나 분했다. 그리고 반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반대표로 무언가를 한 것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응원을 받은 것도 나에게는 흔치않은 일이라 보란 듯이 1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그날 내내 반친구들에게 미안하고 아쉽고 분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3이 되었고 또다시 체육대회가 시작 되었다. 나는 또다시 반대표로 1500m 장거리 대회에 나갔고 나에게 역전승을 안겨준 친구가 함께 출발선에 등장하였다. 이 장면을 미리 예측한 나는 사실 대회 한달 전부터 나만의 연습을 했다. 자율학습시간에 하루 30분씩 나를 교회로 이끈 임꺽정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7바퀴 반을 뛰는 연습을 하는데 처음에는 보통 속도로 달리다가 5바퀴부터 남은 2바퀴반을 전력 질주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한달을 쉬지 않고 매일 같은 반복 연습을 했다.
그리고 체육대회 당일 출발선에 선 나의 마음속에는 자신감이 넉넉히 차올라 있었다. 스타트를 알리는 총이 울리고 나는 연습한대로 5바퀴까지는 보통속도로 뛰며 3등을 유지하다가 준비된 시점인 6바퀴부터는 전력 질주를 했다. 순식간에 1등으로 앞서나갔고 결승전에 도착할 때쯤엔 2등과 1바퀴차이로 1등으로 결승 테잎을 끊었다. 내 인생에 가장 짜릿한 승리였다. 나만의 전략을 짜고 연습하고 노력해서 얻어낸 승리였기에 지금생각해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 내마음속 가장 큰 훈장을 받은 날이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마음속에 큰 깨달음을 새기게 된다. “ 나도 마음먹고 노력하면 누군가를 이길수가 있구나..” 라고 내마음속 깊이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이후로 늘 꼴찌만 했던 공부도 하루 3시간씩 자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 아침이면 달을 보고 가장 이른시간 첫 버스에 올라타 학교에 등교를 했고, 학교를 지키는 관리아저씨의 출근시간보다 더이른 시간이라 내가 학교 복도 조명을 하나씩 켜며 교실에 들어갔다. 남들보다 늘 1시간 일찍 등교를 하였고 남들보다 확보된 1시간 동안에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소음 이어폰을 귀에 꽂아두고 수학문제 3문제씩을 풀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비록 남들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나는 후회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 나의 마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버스를 타도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숫자를 다 더하는 셈을 하고 두자리씩 더해서 곱하는 셈도 하고 두자리씩 더해서 빼는 셈도 하고 아무튼 오랜시간동안 사용하지 않던 나의 머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며 내가 평생한 공부의 양보다 더 많은 양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고3 수능시험 치르기 마지막 모의고사때 400점 만점중 370점을 받았다. 이성적이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점수였다. 그리고 수능을 치르고 성적표가 나왔다. 결과는 311점이었다. 내가 모의고사때 받은 점수보다 훨씬 못 미치는 점수였다. 나는 또한번 깨달았다. 이게 정말 나의 진짜 실력이구나.. 반 친구들이 나의 열정과 노력을 알기에 재수를 해보라고 한목소리로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까지하고 싶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공부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기초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내가 늘 꼴찌를 하던 내가 수능 311점을 받고 상위 30%를 얻은 것도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주제파악을 하고 대학 입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 1500m의 달리기 사건과 고3생활 중 공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경험으로 내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은 끈질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