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장사의 시작 003) 나에게 너무나 특별한 고객님 한분
장사를 처음 배우던 19살의 겨울이었다. 보세 신발을 판매하는 곳이라 매장의 셔터문을 올리면 추가적인 입구 문이 없었고 바람이 그대로 통하는 구조의 매장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끌려고 애를 썼고 지나가던 고객님이 하나둘씩 호기심 섞인 눈빛을 하며 매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간 여러 고객이 들어와서 나에게도 응대할 기회가 주어졌고 고객님께 최선을 다했다. 여러 제품을 설명하며 보여주고 신겨주고 환심을 사려 칭찬도 아낌없이 했다. 고객님은 매장에 들어 온지 30분이 지나서야 한 제품을 고르셨고 구매 결정을 하셨다. 단 운동화 끈을 묶어 달라며 요청을 했고 나는 흔쾌히 알겠다며 끈을 씩씩하게 묶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나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거칠었고 여기저기 건조한 채 갈라져있었다. 끈을 묶다가 유독 갈라진 틈에 운동화가 걸려서 그만 나의 손에는 피가 조금식씩 베어 나오기 시작했고 운동화 끈에도 적은양의 피가 묻게 되었다. 고객님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셨고 나에게 “ 피 묻은 운동화를 사면 재수가 없다.”며 구매결정을 번복 하셨다.
새것으로 드린다고 하고 새로 운동화 끈을 묶어 드린다고 했지만 고객님은 끝내 단호하게 거절하며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마치 구매 결정을 해두고 운동화를 묶는 사이에 고민을 하셨나 보다. 그리고는 거절할 만한 명분을 찾아서인지 이때다 싶어서 거절을 하고 나가신듯했다. 참 많이 속상했다. 못 팔아서 속상했고 주변 선배들에게 판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속상했고 하필 그때 흘러내린 나의 손에 난 상처와 피가 원망스럽고 속상했다. 손을 보니 살면서 가장 험한 손이 되 버렸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추위에 손이 터서 갈라지고 피가 나는 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그렇다. 못 판 것은 못 판 것이다. 장사는 파는 사람과 못 파는 사람 두 분류로 나뉘어 진다.
결과를 이기는 과정은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과정에 최선을 다해도 팔지 못하면 그 과정의 최선은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장사세계의 룰이다. 장사는 도덕책을 기준삼아 평가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숫자 게임이고 숫자로 증명해야만 한다. 억울해도 속상해도 어쩔수가 없다. 자신의 과정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듯이 그에 맞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냉정한 장사계의 룰을 인정할 때만 자신의 노력이 조금 더 뽀족 해지고 날을 새우게 된다. 나는 피 묻은 고객님을 25년이 지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빨간색 코트를 입고 계셨고 광이나는 검정색 힐을 신고 계셨고 말투도 꾀나 고상한 말투였다. 내가 지금도 그 고객님을 섬세하게 기억을 하는 것은 그 고객님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 기억은 나에게 또 한번의 오기와 독기를 만들어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의 열정에 온도가 식었다고 느낄 때면 그때의 그분을 상상 속으로 초대를 한다. 그리고 거친 손으로 콧물을 닦아가며 열심히 장사를 하는 나의 19살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의 뛰는 심장을 느끼고 현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