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장사의 시작 009) 새로운 도전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주변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입을 모았고 나또한 그 말에 부인할 수 없었다. 첫 오픈하는날부터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예비 장모님께 동거조건이 1년 안에 전세금을 준비하는 것과 아내와 결혼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기에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할 수있는 것은 온전히 지금에 승부를 거는 것이었다. 오픈을 하면 아내는 매장 청소를 했고 그동안 나는 동네 아파트촌을 다니며 집집마다 우리매장홍보 전단지를 붙였다. 매번 아파트 경비실 관리자 아저씨와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고 때로는 알면서도 이런 나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라인 출입구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 뭉치를 모두 돌리고 나면 매장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 했다. 오픈을 하고 몇 일이 지나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막내딸이 중학생인데 수학여행을 간다며 옷을 사러 오신 것이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 서로가 어디서 본 것같은 마음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을 했고 알고보니 동성로 시내에서 점장으로 있을 때 단골 고객님이었던 것이다. 단골고객님은 아지야? 아지야가 여기 왜있노? 라며 서글서글한 사투리에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나는 창업을 했다고 말씀드렸고 갑자기 어머니께서는 전화기를 들고는 주변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어머님들이 우리매장을 가득 채웠고 불러 모으신 단골 어머니께서는 각자 30만원씩 책임지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친구 분들은 이것저것 고르시며 물건을 구매해주셨고 단숨에 200만원치의 매상을 올릴 수가 있었다.
알고보니 그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동 대표님 이었던 것이었다. 참 세상좁다는 생각도 들었고 장사도 인생도 어디에서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골 어머니께서는 “ 아지야 시내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하더만 결국 사장이 됐네! 억쓰로 축하한데이~!!” 라고 말씀하시며 나의 어깨를 힘차게 치시며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가셨다. 매장 오픈한지 두 세달이 지나자 점차 단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광고글처럼 처음오신 고객님은 있어도 한번만 오신분은 없었다. 대부분이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머니 손잡고 매장을 방문해주셨는데 한참 예민한 사춘기때라 예쁜 옷을 사주면서도 어머니께서는 부모 자식간에 실랑이가 벌어 질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어머니편을 들면서 아이를 설득해 팔았다. 남학생의 경우 키에 관한 관심이 참 많을 때라 성장에 관련된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간단한 성장 스트레칭을 알려주며 부모님과 아이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상인은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도 팔고 고객님께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유익함이라도 제공할 수가 있어야 한다. 부모님께는 우선 커피나 차 한잔을 내어 드렸고 매장 내 쇼파에 앉혔다. 참고로 최종계산을 하시는 부모님을 최대한 편하게 해드려야 재방문이 이루어진다. 아이에게는 예쁜 옷을 여러 벌 코디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몇 가지 질문으로 말문이 트이게게 하고 그 말에 공감을 하며 리 액션을 아주 크게 해드렸다. 점점 신이 나셔서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술술 꺼집어 내어 말씀하셨고 나는 그 가족들의 정보를 듣고 따라오지도 않은 가족들의 옷을 추가로 보여드리고 구매하게 했다.
아이 또한 예쁜 옷 코디를 여러 벌 입어보면 하나만 사기가 고민스럽게 했고 결국 셋트 구성으로 구매를 해서 고객님의 객단가를 높여 나갔다. 계산 할 때는 부모님의 자존감을 높여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학생에게 이렇게 예쁜옷을 여러벌 사주신 부모님은 학생 어머니뿐이라며 좀 전에도 학생이 하나 더 사달라고 울면서 보챘지만 결국 사주지 않았는데 학생은 정말 어머니께 감사해야 한다면서 어머니를 치켜세워 드렸다. 오늘 저녁 설거지는 학생이 해야 되는거 알지요? 라면서 웃으면 학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매장문밖까지 배웅해드렸다. 이렇게 단골은 하나둘씩 늘어났고 오픈한지 6개월 만에 내가 근무했던 동성로 시내의 매출을 따라잡게 되었다. 작은 동네상권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본사 담당자들도 매장에 방문 할 때면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의아해 했다. 이렇게 작은 상권에서 전국 매출 1등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전략은 이랬다. 나는 시내에서 분주하고 세련된 장사를 배웠고 작은 동네의 상권일지라도 시내처럼 장사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전략이었다. 음악도 크게 틀고 윈도우 디피도 시내보다 더욱 세련되게 연출했다. 그리고 장사도 그 어느 곳보다 고객의 마음을 공감하고 터치하는 장사를 했다. 때로는 피곤해 보이는 부모님을 보면 여느때처럼 쇼파의자에 앉혀드리고는 간단한 간식과 함께 비타민을 챙겨드리기도 했다. 시원한 물을 한잔 드리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라며 의미를 붙여서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웃음을 지으면 나의 애교와 노력에 호흥을 해주셨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내와 동거를 하는 대학가 원룸에 들어가면 나는 아내에게 문을 걸어 잠그라고 하고 다시 나와서 주변 원룸 촌에 매장 홍보 전단지를 돌렸다. 사실 그때 돌린 전단지가 큰 광고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수가 있었고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새벽 한두시쭘이 되어서야 원룸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오픈한 첫 달부터 운이 좋아서인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인지 매출이 꽤나 좋았다. 하지만 소비는 늘 아끼고 아껴야만 했다. 예비 장모님과 약속이 단한순간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세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아무리 못해도 1억은 필요했기에 나는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야만 했다. 아내를 오토바이 뒷 자석에 태우고 집에 돌아 올 때면 대학가라서 그런지 먹거리가 늘 즐비했고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맛있는 냄새를 이겨내기가 참이나 힘들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오토바이 속도를 높여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냉정했던 순간이었다. 한번씩 맛있는 안주에 맥주한잔 하면서 여유를 가질 수도 있을련만 그 당시 나의 마음에는 그것마저 사치로만 느껴졌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예비장모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지독하게 장사를 하고 지독하게 돈을 모았다. 매장을 오픈한지 11개월 만에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다름 아닌 아파트 전세을 얻어 이사를 가게 된것이었다. 예비 장모님과의 약속을 보란 듯이 지켰고 가장 먼저 장모님을 모시고 집들이를 했다. 좋은 집도 아니고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세상을 다가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