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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002 어머니와의 단둘이 떠나는 소풍

by 우상권

아버지의 기억은 단 하나가 있다. 다행이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긴 기억이다. 시골에서 연중행사로 대구에 있는 여러 가수가 출연하는 대구공연장에 가서 행사를 구경하는 것이 있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대형버스가 시골마을에 몇 차가 들어왔고 우리는 버스에 줄줄이 타서 행사장까지 이동을 했다. 내가 가장 어린6살 꼬마아이라 아버지께서 자신의 품에 나를 안고 타셨다. 엔진 열이 뿜어 나오는 버스 맨 앞자리 그곳에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앉았다. 그때 아버지의 풋풋한 냄새가 아직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지인들에게 돈을 여기저기 많이 빌려주신 터라 어머니께서 그 돈을 받으러 어린 나를 데리고 참 많이 다니셨다. 어머니의 증언으로는 돈을 빌린 친구들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어머니를 모른 척 하더라는 것이다. 그 당시로는 차용증이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술 한 잔 먹으며 말로주고 받으며 빌려 준돈이라 설득해서 그 돈을 돌려받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어린 막둥이 나를 데리고 간 것은 아마도 그들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빌린 돈을 받기 위한 어머니만의 전략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돈을 받으러 아버지의 친구 집으로 찾아갔는데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돈을 빌린 아버지의 친구는 보이지 않고 병든 아내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가장 먼저 하신 것이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부터 하셨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 동네 슈퍼에서 먹 거리를 사와서 그들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분명 빌린 돈을 받으러 왔는데 무슨 일인지 어린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해가 지기 전에 버스를 타기 위해서 딸기밭을 어머니와 한참을 걸어 나왔다. 틈틈이 어머니시선을 피해서 몰래 딸기를 따서 먹은 것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몇 달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께서 철없이 빌려준 돈을 받으러 다녔다. 지금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한 일이지만 결국 받은 돈은 한 푼도 없고 찾아간 집이 형편없어 보이면 되 려 도움을 주고 오셨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는 비록 아버지께서 흘리신 돈을 주어 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 같은 어머니의 성품은 지금의 4남매가 아무런 탈 없이 잘살고 있는 것에 운을 더해 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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