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졸업사진 그리고 이사 가는 날
내가 7살이 된 해에 어머니께서는 큰 결심을 하셨다. 성주 시골 땅 에서는 미래도 비전도 없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대구로 이사 가는 것을 결심하셨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대구에 가서 아이들 학교도 다니고 자신도 직장을 얻겠다는 취지였다. 대구로 이사를 가는 날 나는 시골학교 병설유치원의 졸업사진을 찍는 날 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가 대구에 살집으로 짐을 가득 싣고 떠난 상태였고 나는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으러 읍내의 사진관에 있었다. 졸업사진을 다 찍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바짝 마르고 새카만 여자아이가 두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려 애썼다. 그 아이는 나의 둘째 누나였다. 어머니께서는 혼자 두고 가는 나를 챙겨 오라고 둘째 누나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우리누나라며 선생님께 소리쳐서 차를 세우고 누나와 함께 손을 잡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짐이 다 빠지고 난 뒤라 시골집은 텅텅 비어있었고 장롱을 걷어내서인지 보이지 않던 방에 거미줄과 먼지가 꽤나 많이 보였다. 문지방에 걸터앉아 누나랑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있는데 해가질 무렵 작은 삼촌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해가 지고 어둠이 가득한 시간에 대구에 새로운 집에 도착을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머니께서는 이삿짐을 풀고 정리하며 부지런히 이리저리 다니셨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처음으로 어머니의 웃음을 보았다. 무언가 새로운 시작에 어머니께서도 기운을 내신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 기운을 내시니 우리 4남매도 덩달아 웃으며 활기를 찾았다.
어둠이 한참을 머물고 있을 때 다 같이 한 이불을 덥고 어둠 컴컴한 천장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이사를 오고 난후 아침이면 어머니께서는 새로운 일터인 기사식당으로 출근하기 바쁘셨고 형들과 누나도 학교 가느라 분주했다. 모두가 집을 나서고 또다시 홀로 집을 지켰다. 대구로 온 후 유치원은 다니지 않았다. 텅 빈 집에 혼자서 배에서 꼬르르 하고 밥 먹을 시간을 알려주면 어머니께서 차려놓은 밥상에 밥을 퍼서 숟가락을 챙겨 밥을 먹었다. 한번은 부엌의 싱크대가 내 키보다 한참 높아서 물 인줄 알고 먹었는데 간장을 마셨던 것이다. 입을 한참이나 씻어 내어도 그 짠 내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동네 놀이터에서 한참을 뛰어놀다가 배가 고프면 집에 가서 어머니께서 장독대에 담궈 놓은 무말랭이 속에 숨겨진 오징어만 속속히 꺼내어 먹으며 잔잔한 허기를 채웠다. 혼자서 집을 보는 강아지마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