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집을 지키는 7살 꼬마아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나의 7살의 하루하루였던 것 같다. 7살의 나이는 자신의 환경과 상관없이 세상 모든 것 이 낯설고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아래 양육해야할 시기이지만, 누나들과 형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까지 혼자 집을 지키며 혼자만의 놀이와 세상을 살아낸 것 같다. 집고양이 마냥 동네를 혼자서 떠돌다 놀이터에 앉아 흙장난을 하면 나와 같은 환경에 사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무리를 짓고 다니다 누나들과 형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그 당시 나의 기억에는 없지만 어머니께서도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시곤 한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기사식당으로 출근 하는길에 동네 슈퍼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는데 막내아들이 다른 아이가 사먹고 버린 초코파이 껍질을 주어서 포장지에 붙은 초코렛을 할 타서 먹더라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그 말에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동전 150원을 손에 쥐어주며 배고프면 주어먹지 말고 사먹으라고 당부 또 당부 하고 가셨다. 그날이후로 어머니께서는 평소 퇴근보다 1시간가량 늦게 퇴근하셨다. 내가 사춘기가 지나고 고등학교가 되어서야 말씀해주셔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이후로 어머니께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비 150원을 아끼시려고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오셨다. 하루14시간 종일 서서 일하시다가 막내아들이 초코파이 껍질을 주어먹는 것이 마음에 아프셔서 그렇게 매일같이 퉁퉁 부은 발을 이끌고 버스비를 아끼며 걸어서 집으로 오셨다.
아직도 나의 마음속의 150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기억에 남는다. 식당에 일하러 나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씩씩했다. 어린 4남매를 홀로 책임 지셔야 했기에 어머니는 씩씩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사셨다. 한번은 주말에 4남매가 모두 집에서 있는 날이었다.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하던 큰누나는 늘 집안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숙제 검사며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다. 어느 날은 큰누나가 시장에 가서 순대를 사오라고 했고 늘 큰누나의 말이라면 복종했던 작은 누나와 내가 시장으로 나섰다. 골목 끝 주택 집이 우리 집이었는데 골목에 공사를 하느라 포크레인이 시끄럽게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길을 단숨에 뛰어서 지나가다 그만 차에 부딪쳐 쓰러졌다. 차주인은 급히 내려서 나의 상태를 보고는 함께 있던 작은 누나와 나를 차에 황급히 태우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그 당시 전화기가 흔치 않던 때라 순대를 사러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큰누나가 어머니께 사실을 알렸고 어머니께서는 일을 하시다가 황급히 뛰어와서는 골목에 공사 중이던 포크레인 앞에 드러누우셨다. 세상 떠나라 우시며 내 자식 찾아오라며 공사장 인부들을 어쩔 줄 모르게 울음으로 혼을 내셨다. 그리고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나의 사고를 목격한 동네 어르신이 사실과 정황을 어머니께 설명해드렸고 어머니께서는 내가 치료받고 있던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 오셨다. 병원에서 나를 보고는 속상해서 때리시고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신세에 짜증이 나서 또 한번 우셨다. 7살 나의 기억은 낮에는 텅 빈 집을 지키거나 이유 없이 돌아다니는 들 고양이가 되었다가 해질 무렵 누나와 형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그제 서야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는 늘 불쌍한 7살의 막내아들 이었다. 그 당시 나의 기억은 씩씩한 나의 어머니, 무서운 큰누나, 철없고 끼 많은 작은 누나,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형 이었다. 그리고 흙이 많은 놀이터, 해질 무렵 동네 엄마들이 밥 먹으러 오라고 손짓하면 갑자기 각자의 어머니 품으로 뛰어가던 친구들, 그리고 홀로 놀이에서 고개 떨 구며 흔들거리는 그네에 앉아있던 나의 모습. 이것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