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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005) 포장마차를 끄는 4남매

by 우상권

어머니께서 우리4남매를 불러 모으셨다. 기사식당을 그만두시고 포장마차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시고 또 한 번 각자의 역할을 심어주셨다.

점심시간쯤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무거운 포장마차의 수레를 끄시고 집근처에 있는 도로가에 자리를 잡으시고 장사 준비를 하셨다. 나의 키보다 훨씬 큰 수레였지만 어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물리적 힘을 보테고 싶어서 뒤에서 힘껏 밀어드렸다. 마감할 시간이 되면 늘 술에 취한 손님과 실랑이를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그 정도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꿋꿋하게 웃으며 하셨다. 어머니께서 포장마차를 시작하시고 우리만의 웃음이 되찾게 된지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구청 단속이 강화되어 어머니의 포장마차는 압수가 되었고 더 이상 우리 집의 행복수레를 끌지 못하게 되셨다. 우리 모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또다시 가족회의에 돌입했다. 어떻게 하면 또다시 포장마차를 할 수 있을까? 만일 포장마차를 더 이상 할 수가 없다면 무엇으로 우리식구가 먹고살 수 있을까? 그 당시 수중에 어머니께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었기에 수중에 단돈 10만원도 없었다. 단속이 심해져 더 이상 포장마차는 할 수가 없고 식당이라도 할 려고 하니 돈이 없어서 그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늘 씩씩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동네 어르신들을 따라 공사장으로 출근 하셨다. 남자들도 고된 일이 공사판 일인데 어머니께서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당을 벌어 오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나이 37살이셨다. 그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얼마나 고되었을 까?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을까? 우리를 남겨 두고 간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 스러웠을까? 지금 44살이 된 내가 본 37살의 그당시 우리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포장마차가 좋아서 하신 것도 아니고, 공사판이 성격에 맞아서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어린 4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오신 것 같다. 지금도 가씀씩 부산 해운대에 펼쳐진 포장마차를 보면 그때의 그 시절의 아픔과 웃음과 울음의 소리와 여러 기억이 나의 마음을 잔잔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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