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어제 결국 둘째의 항생제를 받아오면서,
그 동안 왜 먹는 것 해댄다고 잠투정 심한 아이를 안 받아줬는지,
너무 미안해서 후회가 몰려왔다.
늑대인간이 되었다고, 악 쓰고 던지고 폭력적이라고 혼내기만 하고,
정작 아이 컨디션을 돌봐주지 못했다.
물론 의식주 중에 식과 주를 해결하느라 힘들었지만,
잠이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임을 알면서도 잠자리에 같이 있어주지 않은 건
독일 정착 초기 3주 동안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다.
그런데 나는 할 일이 너무 많다(지금도).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할 일이 쌓여있는데 애 옆에서 계속 누워 있을 수 있었을까?
밥이 중헌 첫째한테, ‘그냥 학교 밥 먹어’라고, 참으라고 말했어야 했나?
만약 그랬다면 첫째가 분노조절장애를 겪었을 것이고, 그러면 또 나는 자책했을 것이다.
이러든 저러든 후회 뿐인 것이 엄마의 인생인 건가.
형아 수학 가르쳐주면, 왜 자기는 안 가르쳐주냐며 방해작전에 돌입하는 둘째.
동생이 아파서 놀이터에서 못 놀게 되자 세상 잃은 듯 슬퍼하고 화내는 첫째.
엄마가 저녁하느라 동동거리는 동안, 먼저 씻겠다고 싸우고 울고 때리고 난리 피우는 형제.
안팎으로 전쟁 상태인 우리집. 평화는 대체 언제 오는 것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엄마들끼리 농으로 이야기할 때 내가 항상 하던 말이 있다.
“엄마는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아빠는 다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 때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자책할 때마다 신기하기는 하다.
왜 아빠들은 엄마처럼 반성하지 않는 걸까?
갑자기 남편 디스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고방식이 부럽기도 하다.
얼마나 속 편한가.
그럼, 이 사고방식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 중…….
결국 이건 책임소재의 문제가 아닐까?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감 자체가 엄마랑 아빠랑 다른 것이다.
최종보스는 엄마니까. 아이한테 아빠는 그저 문제해결과정에서 거쳐가는 관문에 불과하다.
결국 결론은 엄마가 내 준다. 아빠는 결정권에서 밀린다.
독일 정착 초기 3주 동안 집과 사투를 벌이는 동시에 아이들과도 많이 싸웠다.
한국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환경 변화를 힘들어했다.
음식이 맛 없어서 배고프고,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설치고,
몸이 아파서 짜증이 날 때,
아이들은 엄마가 그것을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
ONLY 엄마에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엄마를 비난하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를 때리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도 화를 내고, 달래보기도 하고, 궁디팡팡하기도 하고,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넌덜머리가 난다. 이놈의 지겨운 사랑. 이래서 웬수같은 자식이라고 하는 건가.
유사이래 제일 화가 많이 나 있는 우리 가족이다.
그나마 김부장님은 우왕좌왕할지언정, 혼자 온화포스를 보존하고 있다.
양말이 모자라도, 신발이 한 켤레여도, 짜디짠 쏘세지에 실패한 밥이 나와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천연기념물.
거지 같은 집에 대한 나의 히스테리 및 분노발작을 토닥여주고,
마누라 살린다고 어떻게든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
아이들과 종일 싸우느라 지친 나를 위해 저녁식사 정리해주고 빨래 돌려준다.
힘들다 배고프다 졸리다 불평불만 투성이인 아이들을 보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렇게 내 마음이 힐링일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불평 없는 아들을 길러내신 것인가 시어머니의 노하우가 궁금할 지경이다.
나도 무던한 아들들로 키워내고 싶은데, 이것들은 무던하고 이미 삼만광년이다.
아들들아, 아빠를 좀 닮고 싶은 마음은 없니?
엄마를 좋아하는 건 좋은데, 아빠 좀 닮자.
엄마는 잠자리도 예민하고 입맛도 까다롭고 결벽증에 속도 좁고 공감능력 제로에 자기중심적이야.
아빠가 너네들하고 놀아주는 걸 못 해서 그렇지, 꽤 괜찮은 아빠야.
아빠는 작은아빠랑 저렇게 의가 좋은데, 너네들은 대체 왜 그렇게 싸우니.
엄마는 이제 자기반성 그만 하고, 너네들한테 잘 안 해줄 거야.
거친 데서 재우고, 학교 쓰레기도 먹이고, 너 입고 싶은 거 입고 혼자 학교 가라고 할 거야.
나중에 커서, 엄마가 나를 사랑해서 막 키웠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막 키우자.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