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밥밥

by 고도리 햇반

독일 마트 물가가 비싸지 않은 편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과일과 야채가 엄청 싸고 맛있다. 야들야들하고 달짝지근한 상추류들, 오동통통하고 윤기가 흐르는 가지, 입 안에 넣으면 톡톡 터지는 포도, 아삭아삭 달콤한 사과… 비닐하우스가 뭐에요, 우리는 씩씩하게 햇빛 받고 자라났어요. 이런 느낌이다. 일단 샐러드를 자주 해 먹게 되었다.


그리고 유제품. 당연히 맛있겠지 기대했지만, 우유 맛이 이렇게 풍부했나 싶어서 놀랄 지경이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향기롭다. 아이들이 계속 우유 달라고 한다. 그래 많이 먹고 키 커라. 독일 애들이 우유가 맛있어서 키 컸나 보다. 요거트도 마찬가지. 아무 것도 안 넣어 먹어도 계속 퍼먹게 된다. 치즈와 버터야 말모말모.


햄과 소세지는 너무 짜서 먹기 힘들다. 염분이 좀 덜 들어간 햄을 찾아봤지만 많지 않다. 어차피 발암물질 있으니까 안 먹지 뭐 하면서도 워낙 대단하게 전시하고 있으니 자꾸 시도하게 된다. 돼지고기는 맛있다. 삼겹살 사서 후라이팬에 구워먹었더니 순삭이다. 소고기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요리곰손이라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재료가 신선해서 다행이다.


빵은 베이커리에서 사 먹는데, 동네 아무 빵집이나 들어가도 한국보다 맛있다. 한국의 설탕 잔뜩 들어간 빵을 어차피 안 좋아했던 나인지라 호밀빵, 통밀빵, 라우겐 등 밥 대신 먹는 빵이 많은 독일 빵집이 무척 흥미롭다.


자, 문제: 빵, 햄, 치즈, 야채가 맛있으면 당연히 뭐가 맛있을까요?




정답: 샌드위치!!!


그렇다, 그냥 쌓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쌓을 필요도 없다.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웬만하면 맛있다. 처음 독일 왔을 때 같은 빵집에서 같은 샌드위치를 나흘이나 사 먹었다. 안 질린다. 이제 “우리집”에 들어왔으니, 샌드위치를 사 먹을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든든한 비상식량이다.


이렇게 내가 독일 먹거리를 탐험하는 동안 아이들은 별 생각없이 잘 적응해주었다. 하지만 밥돌이 남편은 나날이 꺼칠해졌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입가심으로 밥을 찾는 밥돌인데, 전기밥솥에 쌀과 물 양을 맞추는 데 누구보다 진심인 남자인데, 며칠 동안 밥이 공급되지 않으니 그렇게 불쌍해보일 수가 없다. 급한 대로 마트에서 리조또쌀, 밀히쌀을 사서 솥밥을 해줬는데, 그닥 우리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밥이 별로 맛 없으니 또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이들이 드디어 학교에 갔다. 부부 둘이서 이것저것 일을 보며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사 먹어 보았다. 오붓하게 둘이, 제대로 음식의 맛을 느끼며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음식점을 갔더니 너무 달다. 설탕을 얼마나 때려 넣었는지, 왜 맛있는 재료에 설탕을 이렇게 넣는 지 의문이다. 한국 음식점의 가성비가 기대에 못 미치자, 남편은 다른 종류의 음식점을 가는 데 동의했다.


글로벌마인드 마누라는 남편을 데리고 터키 음식점, 인도 음식점, 중국집에 가 보았다. 놀랍게도 모두 서울보다, 서울만큼 맛있었다. 옛날 미국에서 유학할 때 먹었던 터키 음식점의 기억을 되살려 허름한 케밥집에서 시킨 팔라플(병아리콩 튀김)랩은 남편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인도 음식점은 강가보다 맛있었다. 버터향 나던 난의 식감과 맛을 떠올리니 입 안에 다시 침이 고인다. 중국집 탕수육이 너무 맛있어서 이틀 연속 갔다. 오버우어젤이라는 작은 도시가 얼마나 글로벌한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나와 달리, 맛있게 먹었어도 남편 눈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워낙 식욕이 좋은 편이라, 먹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와 달리, 남편은 밥이랑 국만 주면 된다. 그렇게 쉬운 남자인데, 미역국 끓여주려고 한인마트 갔더니 미역을 안 판다. 된장찌개 끓여주려고 재료를 사긴 샀지만, 남편은 이미 깨달은 것 같다. 여기서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기는 어렵다는 것을.


독일에 왔으니, 유럽 먹거리를 먹자! 대신 밥은 해줄게!


한인마트에서 산 김포쌀로 솥밥을 했더니, 맛이 꽤 그럴 듯 하다. 이제 우리집은 김치 대신 샐러드, 국 대신 수프, 반찬 대신 각종 고기구이, 그리고 밥으로 끼니를 이어갈 것 같다.


아이들은 벌써 학교에서 주는 점심이 맛없다고 불평한다. 그래, 엄마도 미국 학교에 비싼 돈 내고 먹는 피자랑 파스타가 너무 맛없어서 꾸역꾸역 먹었었어. 배편으로 부친 짐들이 와서 제대로 된 부엌을 쓰게 되면,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약속했다.


글을 쓰고 있는데 “점심에 뭐 먹지?” 남편이 슬픈 눈으로 물어본다.

오늘은 일요일, 밥돌이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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