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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일 Oct 25. 2022

1.2 누구에게나 원대한 꿈이 있었다.

어릴 적 꿈을 위해 집중하던 적이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너무도 큰 꿈에 생각만 하다가 지쳐 버린 적이 한두 번 겪다 보니 결국 중간에 포기하여 주저앉은 채 나는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그런 꿈들을 포기하였다. 아니면 꿈의 방향성을 잘못 걸어서 아주 작은 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곤 했다. 어릴 적 생기부를 보면 내 꿈은 과학자 혹은 대통령으로 되어 있었다. 그 꿈들은 어디로 사라진지 오래고 나는 현실을 살기 빠듯했다. 그러던 중 성인이 된 나는 술로 나의 꿈을 태우고 있었다. 술만 먹으면 모든지 다 될 거 같은 기분에 나는 술에 매달려 살았던 것 같다. 술에 취하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보이기도 시작하였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내성적이던 나도 없어졌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성격장애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엔 술이 내게 신이 였고 나에겐 예능 충전지였던 것 같다.

 술을 만취하면 내 꿈은 더욱 더 앞서 가는 것 같았고 술에 깨면 숙취와 함께 현실로 돌아와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걸 몇 년을 반복하니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였다. 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술이라는 악마의 열매에 내 몸을 던져 버렸다. 그 이후에 오는 너무도 큰 좌절감에 패배자인 것 마냥 사는 게 너무도 편했다. 남들이 나를 욕하고 나를 못났다 하여도 큰 감정의 기복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패배자가 너무도 편하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술에 이여 패배자의 삶에 빠져 들었다. 너무도 편했다. 모든 걸 포기하니 마음마저 여유로웠고 마음이 여유로우니 삶에 만족하고 안주하여 살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중 성격장애와 우울증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왠지 죽으면 편할 것 같았다. 나는 삶 에서조차 패배자로 전략 하기 위한 최단의 지름길을 걸어온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의 표본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살 시도 끝에 병원을 가는 것을 택하였고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나니 그제야 술과 패배감에 지쳐 있던 나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겐 너무도 불쌍한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우울증은 책으로 고쳐’ 라는 나의 저서를 집필하면서 통하여 나의 우울함을 떨구기 시작하였다. 그렇기까지 진행하는데 까지 너무도 많은 장벽이 있었다. 그 시점 나의 미래는 무엇을 고민하던 때 지인이 자신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카페에서 같이 토론을 해보자 라는 제안을 받았다. 원래도 친하던 지인이었지만 왠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지애를 느껴 나는 흔쾌히 카페에서 토론 같은 수다를 매일 혹은 일주일에 3~4일을 거쳐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문득 내 꿈이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던 게 무엇인지 대한 질문에 친구에게도 나 에게도 던져 보았다. 나의 꿈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나라는 인물이 이 세상에 왔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라는 것이 다였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재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나는 IT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 재능으로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답은 NO라는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문득 내가 수다를 좋아하고 혼자 망상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 떠 올랐다. 그 순간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 했고 소설을 써보려고 마음을 너무도 쉽게 해 버렸다. 왠지 내가 하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 말을 지인에게 하니 지인은 SNS에 글을 올려서 반응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나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바로 평소에 관심도 없던 SNS을 만들어서 그날의 생각들을 정리 하거나 간단한 글들을 매일 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려서 나의 팔 로우 수에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것 자체는 작은 바람이지만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울증은 책으로 고쳐’ 출간 제의를 받게 되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쓰고 싶던 것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기에 내가 이걸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나는 제안에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러던 나에게 지인은 일단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며 나에게 써보라고 하였다.

평소에 SNS에 올리는 것도 어찌 보면 에세이의 한 종류 일수 있다며 나에게 내 과거의 이야기 내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출근 길에 노트북도 없이 맨 몸으로 다녔던 나는 노트북은 나의 분신과도 같이 일과 글 쓰기를 병행하면서 매일 같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책 집필이었고 어디에도 나처럼 하면 베스트셀러 작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쓴 글을 다시 지우고 다시 쓰기도 많이 했다. 그런 과정 중 나에 대해 더 잘 알아 가는 시간이었고 어린 나에게 너무도 미안해지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너무도 나약했던 내가 어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더욱더 글에 매진 한 시간들이었고 나에 대한 원대한 꿈을 다시 자라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다.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올 순 없었지만 계속 패배자로 살아 가던 나를 구해 준 것은 바로 글 쓰기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 주곤 할 때면 글로써 정리해 보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글의 매력을 알면서 글로 정리하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생각을 해야 한 다는 것을 알기에 종종 추천해 주는 편이다.

책도 읽지 않던 내가 작가가 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것은 단순한 이유였지만 나는 늦은 나이지만 나의 꿈을 위하여 오늘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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