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by 무명독자

크리스마스다. 그러면서 빨간 날인 25일이기도 하다. 이브날인 어제 긴 외출을 하고 돌아와 몸이 피로했다. 처음 눈이 떠진 건 오전 8시였다. 부스스한 눈으로 협탁 위에 올려진 물컵을 확인했다. 갈증을 해소하기엔 물의 양이 현저히 부족했다. 일어나서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껏 힘을 준 상태로 10초간 유지했다. 긴 시간 누워있다가 일어났을 때 항상 하는 루틴이다. 이렇게 해야지 조금이나마 중심이 잡힌 상태로 걸을 수 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냉침한 라벤더차가 담긴 물통을 꺼냈다. 반만 따르고 나머지 반은 정수로 따랐다.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을 갔다 오니 졸음이 밀려왔다. 오늘만큼은 몸이 원하는, 아니 내가 원하는 생리적 욕구에 최대한 맞추자는 생각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맞다. 축 늘어지겠다는 말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다. 눈을 뜨니 오후 3시를 갓 넘기고 있다. 14시간 이상을 수면에 소비했다. 샤워부스 안에서 헝클어진 머리와 머릿속까지 씻겨냈다. 씻고 나오니 배가 고파졌다. 며칠 전에 포장한 장어구이를 꺼내 에프에 굽고 있다. 장어의 기름진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땡!’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밥통에 밥이 없다. 쟁여둔 냉동밥도 없고, 햇반도 없다. 괜찮다. 장어니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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