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도전을 빙자한 일탈 2

by 무명독자

“오늘은 치료실 밖에서 운동합시다. “


담당선생님이신 재활 팀장님께서 내게 미션을 주실 거 같은 느낌이다.


“횡단보도 건너 볼까요?”

“오오 좋아요!”

(혹시 주말에 유니클로 매장 갔다 온 거 보셨나..?ㅋ)


사실 유니클로 매장 가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위험할 거 같아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까지는 가봤다. 그리고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봤다.


시간은 30초 정도. 중간에 발이라도 헛디디면..ㅠㅠ


눈으로는 계속 횡단보도를 보고 있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보고 있는 횡단보도 안에 나 자신을 올려놓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 3초에서 5초 정도 모자랄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했던 와중에 팀장님께서 먼저 횡단보도 건너보자고 하시다니!

워커로 잘 걸어 다니는 걸 보시고는 팀장님도 나름 생각을 하고 계신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팀장님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횡당보도가 점점 가까워지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바로 케어해 줄 사람이 있으니.


“어때요? 시간 안에 건널 수 있을 거 같아요? “

“글쎄요.. 와 근데, 횡단보도가 원래 이렇게 길었나요?”


정말 내가 봐왔던 횡당보도보다 훨씬 더 길어 보였다.

게다가 시간은 왜 30초 정도밖에 안 주는 거지!?!?


사고가 나기 전에는

횡단보도가 길던 짧던, 시간이 30 초건 20 초건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건널 것이다. 애매하면 뛰면 되니까.


그러나 장애인이 되니

횡단보도가 좀 짧았으면, 시간이 40초 정도로 여유롭게 설정되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내가 퇴원하고 사회로 복귀할 때 모든 것들이 다 두렵게 느껴지겠구나. 병원에 있을 때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기반을 잘 다져놓고 퇴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초록불 때 건너봅시다.”

올 것이 왔다.

“네. 혹시라도 저 넘어지면 업고 건너주세요.ㅋ”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고 있는 사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정지선에 있는 차들이 “야. 빨리빨리 건너라.” 하는 거 같았다.


중간쯤 왔을 때 남은 시간을 보며 계산하기 시작했다.

흠.. 진짜 3초 에서 5초 정도 모자랄 거 같은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골반이 뒤로 빠지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 좀 모자랄 거 같네요. 그래도 마음 급하게 먹지 마세요. 제가 옆에서 잘 봐드릴게요.”


정말 5초 정도 모자란 상태에서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옆에서 팀장님이 운전자 분들께 손을 뻗고 양해를 구하고 계셨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많은 걸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직까지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몸상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마음이 급해지면 자세가 많이 틀어져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것.


고쳐 나가면 된다. 우선 평지를 걷는 건 이제 문제없으니 경사가 있는 곳에서 운동을 해보자.




“아버지. 이제 안 오셔도 돼요. 저 혼자 가 볼게요.”


대학병원 외래진료가 있는 며칠 전.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외래진료가 있는 날에는 아버지가 연차를 쓰시고 함께 동행해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별 문제없을 거 같았다.

아니 사실은..


일탈을 계획하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말하면 절대로 허락을 안 해주실 것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혼자 멀~리 나가보나..ㅋ


오전에 있는 외래진료를 마치고 나머지 오후 시간에 뭘 할지, 어디를 갈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 맞다!

뭐 입고 가지?ㅋ

바지는 있는데 마땅히 입을 옷이 없었다. 바로 무신사 어플을 켜고 무지티 쇼핑을 했다.

(참고로 내 취향은 애매한 프린팅이랑 로고가 박힌 옷 보다 깔끔한 무지티를 선호한다.)


[주문완료!]


뭐 입고 갈지도 정했겠다. 이제 장소를 정해보자.

…..

영화관!!


내가 왜 영화관을 생각 못했지?

아마도 지금 내 몸상태를 볼 때 영화관을 가는 건 무리일 거 같아 애초에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거 같다.

영화관 일탈을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가능할 거 같다는 판단을 했다. 사실 조금 무리일 거 같다는 생각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이미 영화관으로 마음이 기운걸..(머쓱)


영화관, 밥, 카페까지 한 건물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음.. 여기가 적당한 거 같다.


[장소 선택완료!]


교통수단으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려 했으나

타이밍이 안 맞으면 배차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환우 한 분의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일반택시로 타고 가기로 했다.

승차거부 당하면 어떡하지..ㅠ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교통수단 선택 완료!]


일탈의 큰 틀은 정해졌으니

다가올 외래진료날을 기다려보자!(설렘)




“6시까지 들어올게요.”

외래진료받으러 나가기 전

간호데스크에 계신 선생님께 보고를 드리고 있다.


”좀 오래 계시다가 오네요. 대학병원은 사람이 많아서 대기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같긴 해요. “

“네. 맞아요..ㅎㅎ;“


간호사선생님께서 알고도 눈 감아 주시는 거 같기도 하고..


카카오택시 어플로 택시 배차를 기다리고 있다.

배차가 잡히자마자 혼잣말로 연습을 했다.

“기사님. 제가 거동이….. “


택시 한 대가 재활병원 정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번호판을 확인 후 뒷좌석 문을 열고 기사님께 말씀드렸다.

“기사님. 제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라 타는데 좀 오래 걸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천천히 타세요.”


먼저 시트에 엉덩이를 쭉 내밀고 앉았다.

그런 다음 다리 한쪽씩 손으로 집어 들어 발판 위로 옮긴 다음, 마지막으로 워커를 접어 옆 좌석 발판에 놓았다. 에구ㅠ 차 한번 타기 힘드네.


묵묵히 기다려주신 기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대학병원에 도착 후 비교적 빠르게 진료를 마쳤다.

아마 부러진 요추 2번 뼈가 잘 붙어있는지 확인차 간 걸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 “많이 좋아지셨네요. 대단합니다.” 라며 칭찬도 해주셨다.

(수술해 주신 아주대병원 정형외과 이한동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외래진료 갈 때마다 느끼는 건

휠체어 타시는 환자분들이 정~말 많다는 거다.

다치기 전 사회생활 할 때는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아니면 내가 신경을 안 써서 못 봤을 수도 있다.

이때의 나는 한 가지 확실한 걸 얻어갔다.


사람들은 나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

내가 휠체어를 타든, 워커를 끌고 다니던 신경을 크게 안 쓴다는 얘기다. 장애인이라고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의기소침해지고 눈치 보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오전 스케줄도 해결했겠다.

이제 영화관으로 출발해 볼까?!




”기사님. 여기서 세워주세요. 이거 세워놓을 자리가 필요해서요. “


내리기 전에 워커를 세워놓을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오전 스케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하나 배웠기 때문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자마자 팝콘 냄새가 은은하게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오려고, 이 팝콘 냄새와 영화관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재활을 했나 싶었다.


아 우선 좀 앉자.


영화와 시간표 그리고 좌석위치까지 정했다.


영화는 마녀 2.

시간은 13시 15분.

좌석 위치는

A나 B열은 고개가 아플 거 같았다.

C열도 괜찮았으나, 내가 D열 까지는 워커로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서 D열로 정했다.


그런데 팝콘을 먹을지 말지는 도착해서까지 정하질 못했다. 왜냐면 내가 팝콘을 사도 이거를 들고 극장 안까지 잘 가져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기 직원분께 부탁해 볼까..


“안녕하세요. 영화는 마녀 2, 시간은 13시 15분으로 예매해 주세요. 아 그리고.. 그.. 제가 걸음이 불편한 장애인인데, 팝콘도 사고 싶어서요. 혹시 입장시간 때 팝콘만 자리에 놔주실 수 있나요.?


내가 생각해도 다소 무리한 부탁인 거 같아 괜히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직원분께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가실 때 좌석 밑에 놔두고 가시면 제가 치워드릴게요.”


와.. 세상은 아직 따뜻하구나 싶었다.


근처에 앉아 상영관 입장시간 때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팝콘 먹는 건 국룰이지.

쩝쩝소리 죄송합니다.


기분 좋으니 얼빡샷도 찰칵!


“자리가 어디셨죠? 아 여기 좌석 밑에 팝콘 놓고 갈게요.”

입장시간이 되자 직원분께서 팝콘을 가지고 가셨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ㅠ


상영관 안으로 들어온 나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워커 먼저 올려놓고 그다음 다리 한쪽씩 올리고를 반복 끝에 좌석에 무사히 앉았다. 고작 계단 몇 칸을 오르는데 땀이 쏟아졌던 기억이 있다. 정말 힘들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없었지만, 기분만큼은 처음 걸었을 때만큼 좋았다. 아니 보다 더 좋았던 거 같다.

아직 6시가 되기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재활병원으로 복귀했다.


혼자 많은 것을 했던 하루였다.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정말 많이 느꼈다.

얻어 간 거 또한 많았다.

워커보다 지팡이보행이 내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


앞으로의 재활목표는 지팡이보행이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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