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을 빙자한 일탈 1
글을 쓰기 앞서 제 행동이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는 걸 밝힙니다. 어쩌면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병원 관계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신발이 없으니 자꾸 구멍이 나네ㅠㅠ
처음 걷기 시작한 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걸음걸이가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 말은 인간의 문명이 없어지기 전까지 아마 계속 쓰일 거 같다.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를 글로 잘 표현해 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후 병원침대에 누워서 옮겨 다닐 때는
“아 휠체어만 타고 다녀도 소원이 없겠다.”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는
“아 워커로만 다녀도 소원이 없겠다.”
이제 워커로 다닐 수 있으니
“아 지팡이를 짚으며 다녀도 소원이 없겠다.”
이 생각을 하며 나는 지금의 내가 소소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하며 생각해 봤다.
음.. 우선 신발부터 알아보자.
내가 신발을 신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굽이 평평해야 하고, 발볼이 넓어야 한다.
굽 같은 경우는
아직 완벽하지 않는 걸음걸이라 굽이 있는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자세가 좀 틀어질 수 있다는 주치의선생님의 조언? 이 있었다.
발볼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보조기를 찬 상태에서 신발을 신어야 하다 보니 발볼이 넓어도 꽤 많이 넓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
이 점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신발이 있다.
나 같은 환자들이 신을 수 있는 특수신발이다.
바로 주문완료!
그러면서 병원에서 대여한 워커를 반납하고
내 전용 워커도 같이 구매했다.
네이버에 재활 워커라고 검색하니
‘노인, 어르신, 노인보행보조기 등등..’
나 아직 청춘인데ㅠㅠㅋ
주문한 신발이 왔다.
허허.. 너무 무거웠다ㅠ
아 이거 어떻게 적응하지..
워커로 깨작깨작 좀 걷더니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잊고 살았던 걸까.ㅋ
신발의 발볼넓이만 생각했지, 무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좋다!
아직 신발의 무게를 이겨낼 정도의 근육이 없지만,
이 시간이 조금 빨리 왔다 생각하고 더 열심히 재활과 운동을 하면 된다.
기존에 복도 걷기를 1시간만 걸었다면 신발을 신고 난 후부터는 점진적으로 운동시간을 늘렸다.
1시간 10분을 걷고, 좀 적응하니 1시간 30분.
또 적응하니 이제 2시간 안에 복도를 2바퀴 걸을 수 있는 체력과 근육이 생겼다.
(이때의 나로 돌아가서 똑같이 운동할 수 있냐 물으면 확답이 안 선다. 그만큼 정말 미친 듯이 운동했다.)
병실에 있다가 재활치료하러 갈 때
처음에는 휠체어로 이동했다. 처음부터 워커로 이동하다가 혹시 모를 낙상이 무서워서다.
시간이 좀 지나고는 오전은 휠체어, 오후는 워커로 이동했다.
그다음은 오전, 오후 둘 다 워커로 이동했다.
워커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휠체어가 병실에 방치된 시간 또한 길어졌다.
이제 휠체어는 씻으러 갈 때, 그리고 병원 앞 편의점에 갈 때만 사용했다.
이 생각이 들 때쯤. 아 맞다.
나 왜 편의점 갈 때 휠체어 타고 가지?
나 이제 걷는데?
신발도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있는데?
조금 위험하지만.. 도전해 볼까?
휠체어를 타고 편의점에 갔을 때는 말 그대로 ‘쌩쇼’ 그 자체였다.
우선, 편의점 문 앞에 가서 휠체어를 걸어 잠근다.
그러고 나서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손으로 툭툭 치며,
“저기요..! 저.. 안에 계시나요!?!?”
이런 식으로 아르바이트생분을 불렀다. 어리둥절한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저.. 정말 죄송한데요. 진라면 컵라면 큰 거 하나랑, 초코송이 과자 하나랑…..”
”아 그리고 제가 너무 감사해서요. 드시고 싶은 음료나 과자 고르세요. 아 아니에요. 제발 골라주세요. 그래야 제가 마음이 편해서요. “
이런 식으로 아르바이트생분께 심부름이라고 해야 할지.. 부탁이라고 해야 할지.. 아 둘 다 같은 말인가?(머쓱)
정말 감사하게도 자주 이렇게 가니, 편의점 사장님께서 아이스크림 냉장고 주변에 호출벨을 설치해 주셨다.
(병원 앞 GS편의점 사장님, 그리고 20대 초반 정도 되시는 안경 쓰시고 조금 통통? 한 남자 아르바이트생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휠체어가 아닌,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워커에 의지해 뚜벅뚜벅 걸으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과자와 삼각김밥이 진열돼 있는 편의점의 풍경은 가히 예술이라 표현하고 싶다. 벚꽃이 만개한 풍경보다 더 이쁘고 아름다웠다.ㅋ
이렇게 워커로 첫 외출?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전을 빙자한 일탈의 욕심까지.
흠.. 이다음은 어디를 가볼까?
또 하나의 도전 장소. 아니 일탈의 장소를 정했다.
병원 근처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이다.
일반인? 걸음으로는 병원에서 5분 정도 걸릴라나?
그렇지만 내 걸음으로는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다.
평평한 병원 복도를 걷는 것과 땅이 고르지 못한 병원 밖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왕복 1시간 정도 잡았다. 날은 주말로.
병원 간호사 분들은 내가 병실에 없으면 운동을 하러 간 거로 알고 계신다. 재활이 없는 주말에 항상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봐오셨으니.
“그래도 바지는 병원복 바지로 입어야겠지? 위아래 사복으로 입으면 들킬 수 있으니.. “
병원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긴장됐다. 밖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헤어밴드가 땀으로 젖어있는 게 느껴졌다.
“넘어지면 안 돼. 정면을 보고 경사진 길은 평소보다 무릎을 조금 더 들고.”
그렇게 정말 30분 정도 걸었을까.
유니클로 매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긴장이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확 트인 공간. 형형색색의 옷과 바지들.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반팔티 몇 장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짐을 들고 다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참고 아이쇼핑만 했다.
전신 거울 앞에 멈췄다. 기념사진 한 장 찰칵!
10분 정도 구경을 하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잊지 못할 하루였다.
오늘 운동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휠체어를 타고 씻으러 들어갔다. 땀을 씻어내는 느낌은 짜릿했다.
다음 행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