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 EP.6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회에서의 일상이나 병원에서의 일상이나
반복된 일상을 사는 건 매한가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건강하냐, 하지 않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버지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눴던 그날의 공기는 탁하고 무거웠다.
아들 걷는 거 보고 가야겠다는 아버지와
걸을지 못 걸을지 어떻게 알고 그러시냐 하는 아들.
부자간의 의견충돌이 거센 나머지 큰 소리가 오가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챈 환우 한분이 눈인사만 슬쩍하시고 재빨리 자리를 피해 준 모습도 기억이 난다.
긍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 자꾸 집어넣으면서도,
제자리걸음 같은 재활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로’ 걸을 수 있는 거 맞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음 한켠에 깊게 자리 잡아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이런 와중에 꼭 걷는 거 보고 가야겠다 하시는 아버지..
왜 무조건 내가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지?
다리를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내 심정을 왜 이해 못 하시지?
걷는 거 걸을 때 걸으면 등등 이런 말을 왜 자꾸 하시지?
아버지께 다소 공격적인 어투로 내 솔직한 심정을 모두 말씀드렸다.
“아버지. 아버지가 간병해 주시는 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걸을 수 있는 걸 당연시하게 생각하고 계셔서 부담이 많이 됩니다.
재활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고 난 후 6개월의 골든타임이라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지 않는다는 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금씩 근력운동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휠체어로 생활할 때 필요한 운동위주로 재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와 재활선생님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까지 제가 다시 걸을 수 있게 열심히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의 상태로 봤을 때 평생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리가 땅에 닿았을 때 아무 느낌이 없고 하늘에 붕 떠있는 거 같은 이 기분을 아시나요?
처음에는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열심히 재활을 해도 진전이 없고, 거기다가 아버지의 기대가 저에게 부담으로 다가와서 솔직히 지금 모든 게 스트레스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 간병 그만하시고 회사로 복귀하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부담감이 점점 불편해지려 합니다.
4인 간병인이든 6인 간병인이든 뭐든 좋습니다.
지금의 저는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넣고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혼자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제 뜻을 이해해 주세요 아버지. “
2021년 11월.
재활병원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나에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우선, 나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바로 다음날에 아버지가 회사로 복귀하셨다. 한 달 동안 간병을 해주신 아버지께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다.
그날. 오전 재활치료가 끝나고 카페에 가서 초코라떼를 주문했다. 초코시럽통을 펌프질 하며 카페 직원분이 내게 말했다.
“아버지 울면서 나가시던데요.. 그것도 펑펑. “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최고의 불효라고 하는데 그다음 불효가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병원에 오셔서 아침마다 내가 마시는 초록색 바리스타 커피를 바리바리 사 오셨다.
뭔가.. 커피라도 주면서 볼 명분을 만드시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부담된다는 나의 말에 분명 상처받았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ㅠ)
병원 시스템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통합간병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다.
통합간병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고, 병원에서 고용한 전문 인력으로 환자를 돌봐주는 서비스이다.
무엇보다 간병비가 확실히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 혼자서도 샤워를 할 수 있어 손이 많이 안 간다.
기저귀는 아직도 차고 있으나,
간헐적으로 속옷도 입는다.
스스로 세운 가설이 하나 있다.
바로, 뒤통수에 찌릿한 느낌이 오면 대변이 마렵다는 신호다라는 가설.
뒤통수가 찌릿한 뒤에 기저귀에 대변을 보는 경우가
열에 아홉은 됐다.
“아! 그러면 그 느낌이 느껴질 때 바로 변기에 앉아 힘을 줘보자! “
이렇게 실천하니 화장실에서 대변을 해결한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뭔가 큰 미션 하나를 성공한 거 같았다.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기 전에 새 속옷을 여러 벌 구매한 기억이 난다.ㅋ
재활 시스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휠체어 생활할 때 필요한 운동에서
걷기 위해 필요한 운동들 위주로 재활을 진행했다.
기립대에 스스로 서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축구하듯이 발을 앞으로 뻥 차는 힘도 점점 늘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반복된 재활의 일상 속에서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
우리 내일은 걸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