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끝판왕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2시를 훌쩍 넘어 곧 3시를 바라보고 있다.
운동을 힘들게 해서 피곤해할 법도 한데 꿈나라로 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워커로 걷기 시작한 후부터, 도통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네..
어느덧 재활병원에 온 지 1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는, 머릿속에 걱정거리들만 가득했다.
재활병원 입원 기간도 이제 8개월밖에 안 남았다. 온전히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있고 싶어도 2년이 지나면 치료가 반 이상 줄어들어 퇴원을 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곧 돈이니 치료가 줄어들면 돈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남은 8개월 동안 아무리 재활을 열심히 해도 보조기구의 도움 없이는 걷지 못할 것이다.
나가면 뭐 하며 먹고살지? 서서 일하는 직업은 이제 못 할 거고..
실업계 고졸에 여태까지 공장일만 해와서 사무직 경험은 전무하고, 컴활 2급이 있지만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스펙이고..
당장 생각나는 게 장애인 전형으로 취업하는 공무원인데, 공부하기 싫어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을 한 내가 어떻게 바늘구멍과 같은 경쟁률을 뚫을 수 있겠나..
입원 초기에는
다시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거 같았지만
퇴원날이 다가오니
아름답게만 보일 거 같은 세상이 이제는 어두운 골목길처럼 보였다. 가로등 하나 없는, 빛 한줄기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골목.
아니 왜 새벽만 되면 우수에 젖어 오지도 않는 시간에 왜 이리 두려워하는 거야. 빨리 잠이나 자자.
몇 시지?
새벽 4시네..
21년 5월.
재활병원 입원 첫날에 어르신 한분께서 이것을 이용해 운동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에 이거로 운동하는 날이 오면 엄청 건강해진 상태로 퇴원을 할 수 이겠구나.
내 기준에서 이것은 재활운동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다.
22년 9월.
때가 온 거 같다.
“저 러닝머신 해봐도 돼요?”
고민하고 계시는 팀장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음.. 좋아요. 그 대신 손잡이는 꼭 잡고 하세요. “
꿈에 그리던, 내 기준 재활의 끝판왕인 러닝머신 앞에 서있다.
“올라갈 때 도와드릴까요? “
잉!?!? 저 영화관 D열도 혼자서 올라가 본 사람이에요!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는 건 껌이죠.ㅋ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괜찮아요 선생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양쪽 손잡이를 잡은 채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러닝머신을 걷고 있다. 아니 너무 빠른 거 같은데?
속도 몇이지? 1..
0.5로 줄이니 이제야 내 걸음걸이 박자와 맞았다.
다치기 전에는 4~5 정도가 경보 수준이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
0.5 속도로 걷든, 0.1 속도로 걷든 일단 걷고 있으니.
돌이켜보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진짜 내가 다시 걷고 있다니..
팀장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하셨던 말씀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 오셨을 때 상태를 보고 다시 걷기는 힘들 거 같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휠체어로 생활할 때 유용한 동작들 위주로 알려드리고 운동하고 했었고요. “
아직 오랜 시간을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발목 보조기와 워커 같은 보행보조기들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거 또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걷는 게 어디냐.
휠체어 타고 생활했을 때, 워커에 의지하며 걸어 다니는 어르신분들만 봐도 부러워했던 나인데.
30분의 러닝머신 시간이 끝나고 팔에 힘을 힘껏 주며 내려왔다. 정수기까지 워커에 기대다시피 하며 도착하고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이 있다.
입원 첫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가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날엔 휠체어 지금은 워커.
만약에 내가 지금까지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면 퇴원할 때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퇴원해야 건강하게 퇴원을 하는 걸까? 모든지 상대적이라 생각했다.
퇴원할 때에 내가 휠체어 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생각을 안 하면 건강하게 퇴원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난 이미 걸어봤다. 걸으면서 지내왔던 혜택과 편안함을 경험했다. 걸음마부터 달리기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해왔던 신체 건강한 남자였다.
걷기에서 오는 엄청난 이로운 요소들과 편안함을 다시 되찾고 싶어 휠체어를 타며 퇴원하는 건 정말 싫었다.
이런 생각들이 평생 휠체어를 타거나,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들에게 상실감 또는 모욕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 아이고 두야..
그냥 인정하자.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태초의 인간이라는 동물은 치사하고 간사하다는 걸.
이제 워커로 돌아다니면서 불편한 부분들이 하나하나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라이 간사한 놈아ㅡㅡ
얼른 지팡이보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