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버티고 이겨낸 자의 결과물

by 무명독자

잉? 50만 원??!


와.. 생각보다 비싸네.

그래도 내 몸을 위해 투자한다 생각하자.


“구매완료. “




“침대 밑에 놔두고 갈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배송요청에 적은 병실 호수를 보시고 이동기사님께서 택배를 가져다주셨다.


(굳이 부탁을 하지 않아도 먼저 챙겨주시는 이동기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매한

가정용 FES(전기 자극 치료) 기기를 언박싱하고 있다.


치료가 없는 주말이나 병실에서 쉴 때 해야지.


치료사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운동, 나머지 공부처럼 하는 걷기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치료가 바로 FES치료이다.


예전보다 몸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도 다리의 움직임이 많이 제한적인 건 여전하다.

내가 쓸 수 있는 근육만 쓰고 나머지 쓰지 못하는 근육들이 점점 몸에서 잃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이 기기를 투자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이 투자로 인해 제발 내 몸이 떡상하길!

털이 많아요ㅠ 미리 죄송합니다.




반쯤 눈이 감긴 채 창문을 열고 다시 누웠다.


옆자리 어르신께서 기저귀를 갈고 계신 가보네..


TV에서 흘러나오는 코로나19 관련 뉴스소식, 요란스럽다 생각 드는 아침마당 MC분들의 멘트, 기저귀를 갈고 계시는 어르신, 바이탈 체크를 하러 오시는 간호사분까지.


거의 일정하다시피 하는 302호 4인병실의 주말 루틴은 늘어지게 자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있다.


그나저나 옆자리 어르신께서 딸 뻘 되시는 요양보호사님이 기저귀를 갈아주면 무슨 생각이 드실까..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왜 굳이 노폐물을 배출하게끔 하게 만들었을까?

그냥 자고 일어나면 스스로 증발하게 끔 만들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아예 대소변과 같은 생리현상을 빼 버리고 만들 수는 없었을까?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인간이 가진 최고의 축복 중 하나라고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에구. 헛 생각 하는 거 보니 잠이 덜 깼네.

씻고 운동이나 하러 나가자.




주차장부터 시작해서 여기 경사길까지 5바퀴 정도만 돌아볼까?

아 근데 오늘따라 왜 이리 하기가 싫냐..


지팡이 보행을 하고 난 후부터 운동이 하기 싫을 때가 종종 있어졌다.

똑같은 일상, 똑같은 패턴의 운동이 지루하다 못해 싫증이 날 정도까지 왔다.


머리는 운동을 해야 하는 걸 너무 잘 아는데

마음이 안 따라주는.


아니면..


이 정도면 됐으니 욕심부리지 마.

라고 스스로가 타협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니 솔직히 이게 맞는 거 같다.

대소변을 보는 건 아직까지 불편해도 걷는 거에 있어서는 조금 편해졌다고 내 몸에 대한 기강이 해이해진 게 확실하다.


정신 차려라.

너 이대로 퇴원하면 그냥 지팡이 두 개로 짚으며 보행하는 장애인이야.

최고의 기량을 되찾기 위한 운동선수의 마인드로 재활하고 운동하기로 했잖아.

예전처럼 한 손으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걷고 음식점에서 아무 도움 없이 쟁반도 혼자 나르고 싶어 했잖아.

간절했던 그때의 마음과 다짐을 잊지 마.




“지금 맥모닝 메뉴 밖에 안 파네. “

“아 맞네ㅋ 그럼 너 먹는 거로 사 와줘. 땡큐!”


동네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창이 얼굴 보러 온 다는 전화를 받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재활병원에 입원하고 세 번째 병문안을 오고 있는 친구에게 얼른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어린아이 마냥 신나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햄버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ㅋ


눈에 익은 번호판의 흰색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친구는 깜짝 놀라하며


“미쳤다. 진짜 많이 좋아졌네! 마지막으로 본 게 휠체어 타는 모습이었는데. “


괜스레 민망해하는 나는

“오랜만~ 차에서 얘기하자.”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이 친구를 봤던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왔다 갔다 하는 감정기복과 무기력함에 빠져 정신과약을 복용했던 때이다.


병원 근처 편의점 앞에서

나는 휠체어, 친구는 쪼그려 앉아 같이 햄버거를 먹었던 그때.

쪼그려 앉게 해서 미안혀 친구야ㅠ

와줘서 고마웠지만 젓가락처럼 얇아진 다리와 폐인 같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나도 쪽팔렸던 그때.


휠체어를 타며 맞이하는 그때의 나 와,

지팡이를 짚으며 스스로 차에 타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도 마음도 정신도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

재활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버티고 이겨내니까 이런 결과물이 생긴 거야. 고통 없이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도 하잖아.


“햄버거부터 먹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깨우는 친구의 한마디에 햄버거 포장지를 확인하고는


“뭐야!? 하나가 끝!? 맥모닝은 두 개 정도 먹어야지~ 센스 없네ㅋ(장난)”


”아오 지팡이 부러트린다ㅋ 용아 근데 너 머리 진짜 많이 길렀다. “


“안 그래도 곧 외래진료 때문에 외출해야 하는데, 그때 미용실 들러서 파마한 번 해볼까 생각 중.”


“와 이제 미용실도 혼자 가고! 너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미용실 들렀다가 시간 되면 가게도 놀러 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 가게에 놀러 갈까 생각도 안 하고.

친구는 나 보러 시간 내서 병문안도 오는 데.. 괜히 미안해지네(머쓱)


”오전에 외래진료 끝내고 미용실 들렀다가 가게 놀러 갈게! 슬슬 가봐야 할 시간이네? 와줘서 고마워. “


곧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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