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아닌 '훈육'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by 원쌤

‘훈육’은 교복을 입던 세대에게는 별로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문 앞에서 매서운 눈으로 학생들을 지켜보던 훈육주임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육은 바람직한 기준과 변화를 가르치는 것이며 벌을 대신할 효과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다.


버릇없이 구는 아이에게 벌을 준다고 해서, 그 버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수긍할 수 없는 ‘매’나 ‘벌’로 아이의 버릇을 고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처벌을 받은 아이는 이미 대가를 지불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에서 벗어나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발각되지 않기 위해 점점 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훈육이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두려움은 대상을 알지 못하는 모호한 위협 때문에 생기는 정서 상태이다. 사람들이 병원 중에서도 유독 치과 가기를 꺼리는 이유와 비슷하다. 하지만 명확하고 뚜렷한 원칙이 있는 훈육은 아이들을 긴장시키기는 해도 두려움이나 불안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성장시키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가 가장 좋은 교육 시기라고 한다.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야단만 칠 뿐, 그 잘못한 일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세상 경험이 부족한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이가 자책하며 불안감에 떨고 있을 때, 부모가 자상하면서도 확고한 태도로 가르친 교훈은 평생 마음속에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고 감싸주기만 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 어른이 되면 사회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대할 때, 부모는 숙달된 정비공이 고장 난 자동차를 다루듯 해야 한다. 정비공은 자동차 주인에게 “왜 이렇게 차를 고장 냈느냐”라고 창피를 주지 않고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이용해 자동차의 상태를 파악한다. 즉 자동차의 고장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고, 어디를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만 지적한다.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을 때에도,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따뜻한 사랑을 담아 타일러야 한다. 일부러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로 나쁜 행동을 계획하는 아이는 세상에 없으므로.

옛날 어른들 중에는 아이가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아무 상관없는 돌부리를 야단치는 경우가 많았다. “에구, 이 나쁜 돌멩이야. 왜 우리 아이 다치게 했어?”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명백한 자신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고 매번 핑계를 대는 무책임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때로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나게 하라.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스스로 책임 지게 하라.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시키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가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식물을 탓하지 않는다. 그 식물이 제대로 잘 자라도록 햇빛이나 물, 온도 등의 환경을 바꾸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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