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하면 양육도 편해진다.
아이의 행복은 엄마의 행복에 좌우된다. 아이에게 엄마는 이 세상 자체이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볼 때 아이는 행복하다. 그러므로 아이의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과 행복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루 24시간 아이한테 매달리는 엄마들 중에는 인간관계(특히 부부관계)가 안 좋거나 삶의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 많다. 사람은 각자가 적당하게 필요로 하는 대상이 있는데, 부부사이가 불안하고 힘들어서 그 대상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만큼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과도한 관심을 쏟으며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려고 한다.
즉, 현재의 내가 불만족스러울수록 아이에 대한 기대는 커져 간다. 그러므로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고 그 행복이 흘러넘쳐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러 명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만 웃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이렇게 웃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기분이 좋은 사람이네요.”라고 대답한다. 그 사람 자체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답은 다르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이군요.”라고 답한다.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소, 닭, 잔디가 그려진 각각의 그림 세 장을 분류하도록 했을 때도 서구인과 동양인의 선택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서구인은 동물의 범주로서 소와 닭을 묶고, 나머지 잔디로 나눈다.
동양인은 소와 잔디를 고른다. 잔디는 소의 먹이고, 잔디가 없으면 소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즉 사물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영철이는 그냥 영철이가 아니라 ‘옆 동네 어느 집 누구누구의 아들 영철’이다.
내 아이가 성공하면 내가 잘한 것이고 내 아이가 실패하면 내가 못한 거라는 생각 즉, 자녀의 성적표가 곧 나의 성적표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 부모들이 아이의 공부에 목을 매고, 서양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인 ‘부모 얼굴에 먹칠한다.’가 생겨난 이유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한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전전긍긍하다 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는 어렵다.
행복은 각자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는 것.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행복의 기원-서은국->
자존감이 낮고 학력 콤플렉스가 심한 엄마,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일수록 자식에게 공부와 성공을 강요한다. 그들에게 자식은 자기 보상의 도구일 뿐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만족감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관대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가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억지로 머리를 잡아 누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럴 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가 인사 잘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평상시에 꾸준히 보여주면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고 다가올 일을 불안해하지 않는 삶, 즉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좋은 습관이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불안해하고, 부모가 걱정을 많이 하면 아이 역시 그런 태도를 습관화해서 살아가게 된다.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오렌지를 짜는데 사과주스가 나오지는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