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에 관한 문제를 꺼내면 으레 두 가지 반응이 돌아온다. "그건 이상론이야"라는 냉소. 혹은 "나라가 위험해진다"라는 공포. 흥미로운 건 두 반응 모두 현재 징병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
2023년 기준 한국의 20세 남성 인구는 약 25만 명 수준이다. 2040년대엔 15만 명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현재 상비군의 규모는 약 50만 명 안팎. 이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가용 병역자원을 거의 전원 징집하는 구조가 이미 고착되어 있다. 선발이 아니라 사실상의 긁어모으기다.
그런데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18개월짜리 징집병이 실질적인 전투력의 핵심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은 현대전의 성격이 바뀌면서 더욱 날카로워졌다. 드론, 전자전, 사이버전, 정밀유도무기 등등 이 모든 것은 수개월의 훈련으로 숙달되지 않는다. 숙련이 필요하고, 숙련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징집병 중심 체계는 그 숙련을 구조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모병제를 반대하는 논거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건 두 가지다. 비용 문제, 그리고 안보 공백 우려.
비용부터 보자. 맞다. 비싸다. 하지만 현재 징병제가 싸다는 착각은 교정이 필요하다. 군 복무 중 사병이 받는 저임금은 시장 임금과의 차이를 국가가 강제로 징수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청년 개인에게 전가된 기회비용, 기업이 입는 숙련 인력 공백, 사회가 치르는 생산성 손실 등. 이것들은 국방부 예산에 잡히지 않지만 실재하는 비용이다. 징병제는 저렴한 게 아니라, 비용을 청년에게 외부화하고 있다.
또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는 좀 더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북한의 대규모 지상군, 지정학적 불안정성. 이것들을 무시하고 모병제를 밀어붙이는 건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은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속도와 설계로 전환하느냐고 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한국형 모병제 전환의 현실적 경로는 급격한 체제 교체가 아니라 10년에서 20년에 걸친 점진적 구조 개편이다.
먼저 1단계(1~5년)는 구조의 정비다. 징집 규모를 유지하되, 간부 비율을 대폭 늘리고 처우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현재 부사관·장교 중심의 간부단이 실질적 전투력의 핵심임을 공식화하고, 병사는 보조 기능으로 역할을 재정의한다. 이 단계에서 모병 지원율이 실제로 얼마나 나오는지를 데이터로 축적한다.
그다음 2단계(5~15년)는 비율 이동이다. 매년 징집 규모를 일정 비율씩 줄이고 지원 모병으로 채운다. 이 과정에서 병력 총수를 30~35만 명 수준으로 합리화한다. 숫자가 줄어드는 대신 개인 전투원의 질이 올라간다. 여기에서 감원된 병력 유지 비용은 잔존 인력의 처우 개선으로 전용된다.
다음 3단계(15~20년)는 완전 모병제의 완성이다. 징집 제도는 유사시 동원 근거를 법적으로 남겨두되 평시엔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예비군 체계는 자발적 참여 유인 구조로 전면 개편한다.
이 설계에서의 핵심은 과도기를 부담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도기는 실증 데이터를 쌓는 기간이고, 설계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완충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병제 반대론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카드가 재정이다. 그리고 재정에 대한 것은 타당한 지적이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 국방예산은 약 59조 원(2024년 기준)이다. GDP 대비 약 2.6%. NATO 기준선인 2%를 이미 초과하고 있지만, 인건비 구조가 비효율적이다. 징집병 60~70%의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간부 인력엔 상대적으로 과소 투자하는 역설이 있다.
그렇기에 전환의 재정 논리는 추가 조달보다 기존 예산의 재배분이 먼저라고 본다. 징집병 수를 절반으로 줄이면 저임금 유지에 쓰이던 행정 비용, 시설 운영비, 단기 훈련 비용이 절감된다. 이걸 남은 직업군인의 처우 개선에 투입한다.
또한 추가적인 재원은 단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방산 수출 확대에 따른 세수 증가분의 일부를 국방 인력 투자로 전용하는 구조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단기에 수십조를 새로 만들어내겠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보다 공격 빌미를 더 많이 제공한다. 그러니 재정 설계는 보수적으로 추계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맞다.
그래서 모병제의 성패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현재 한국에서 군인이 매력적인 직업인가 아닌가.
나는 현재의 답은 "아니요."에 가깝다고 본다. 병사 월급은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임금과의 괴리가 크고, 복무 경력이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간부가 되어도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를 뒤집을 필요가 있다. 병사의 초봉을 월 350~400만 원 수준(세후)으로 끌어올리되, 간부와의 격차는 명확히 유지해야 한다. 부사관 초봉은 500만 원 이상, 여기에 주택 지원·학자금·의료 보장이 더해지면 단순 임금 비교 이상의 총보상 경쟁력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핵심은 "많이 줄게."가 아니라 "군 복무 기간이 커리어가 되는 구조"이다. 민간 기업과의 연계 채용, 복무 경력의 법적 인정, 전역 후 직업 교육 의무화는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할 현실적 유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위험 직무에 대한 파격적 수당 체계도 필요하다. 같은 군인이라도 특수전·사이버전·정찰 같은 고숙련 보직은 민간 전문직과 경쟁해야 한다. 그렇기에 성과와 위험을 반영한 차등 보상 없이는 우수 인재가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병제 논의에서 가장 손쉬운 반론은 "한국은 특수하다"라는 것이다. 북한이 있고, 병역자원이 부족하고, 재정이 없다는 것.
그런데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폐지했다(물론 현재 러우전등으로 인해 다시금 부활했지만). 프랑스는 1996년, 스웨덴은 2010년 폐지했다가 2018년 부분 재도입했다. 어떤 나라도 "안보 환경이 완벽히 안전해진 후에" 제도를 바꾼 게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설계했고, 수정했고, 지금도 조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불가능하다"라는 말의 본질은 종종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라고 본다. 물론 제도의 전환은 리스크가 있다. 그런데 전환하지 않을 때의 리스크(병역자원 고갈, 전투력 약화, 청년 불만 누적)는 계산에 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모병제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떤 설계와 속도로 전환할 것인가."로 말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지금 당장 모든 징집병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20년에 걸쳐, 데이터를 보면서, 단계적으로, 군인이 진짜 직업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군 복무를 강제가 아닌 선택으로 만드는 것이 군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더 강하다는 건, 군사학의 기본 명제 중 하나다. 여기서 문제는 의지다. 그리고 의지 다음엔 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