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란 어떻게 해야하는가

제도보전주의적 외교관에 대하여

by Edward Alistair Lang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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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를 도덕으로 설명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미국은 선하고 중국은 악하며 북한은 근절해야 할 적이라는 언어는 감정의 언어지 전략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반대편의 언어. 즉 미국에 맞서야 자주이고 중국과 협력해야 평화라는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외교를 도덕극으로 만드는 순간, 국가는 감정이 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비용은 시민이 치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교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것에 대해 두 가지를 묻고자 한다. 이 관계가 대한민국 시민을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보호하는가. 그리고 그 구조가 지속 가능한가.


먼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한미동맹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미국이 선해서도, 우리가 미국과 같은 가치를 공유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억지력은 현재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안보 자산이고, 동맹은 가치의 연대가 아니라 구조적 이익이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 동맹이 종속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전작권 환수는 공허하고, 준비된 환수를 무기한 미루는 것은 종속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 미국에 대한 의견은 이렇다. 자주국방은 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동맹 내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런 반박을 할 수 있겠다. "비지배 자유라는 원칙 자체가 서구적인 가치인데, 그렇다면 그걸 기준으로 삼는 건 또 다른 도덕극이 아니냐"라고. 나는 이 반론을 인정한다. 원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에 원칙이 없는 외교는 그때그때의 감정과 여론에 끌려다닌다. 따라서 불완전한 원칙이라도 명시적으로 세우고 그 한계를 아는 것이 원칙 없이 움직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중국이다.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은 한국의 유통·관광·한류 산업에 비공식적인 보복을 가했다. 그리고 보복의 수단은 경제의 의존이었다. 또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그렇기에 난 이 현실을 무시하는 반중 감정론은 국익을 훼손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의존을 방치하는 것 역시 압박의 레버리지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나의 해법은 중국 혐오가 아니라 의존도의 점진적 분산이다. 전략산업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안보와 경제를 구조적으로 분리하는 것. 중국이 원할 때 언제든 압박할 수 있는 구조를 줄여나가는 것이 이 제도보전주의의 목표다.


다음은 북한. 나는 대북 문제에서 북진통일론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교적인 전략이 아니라 북한이 싫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주민은 지금도 자의적 지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겪고 있다. 그렇기에 그 체제를 묵인하면서 통일을 말하는 것도 위선이고, 체제 붕괴만을 목표로 대결하는 것 역시 나는 설계 없는 외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점진적인 통합을 지지한다. 이 점진적 통합의 경로란 상호 불가침과 기본 외교관계 수립, 제도적 신뢰 구축, 남북 연합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헌법 통합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이른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권력 보존은 협상 카드로 기능할 것이다. 현실적인 동기가 없으면 체제는 문을 열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 긴장을 인정하는 것이 설계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조건이라고 나는 여긴다.


마지막으로 일본. 나는 일본에 대해선 지일의 태도를 견지한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과거사의 봉합을 말하고 싶지 않다. 역사적 책임과 전략적 협력은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일 감정이 협력의 구조를 막을 때 그 비용은 한국이 치른다고 본다. 반면에 러시아에 대해서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타국을 자의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의 가장 노골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러 군사협력이 한반도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현실에서 대러 관계를 실용 외교의 이름으로 유연하게 다루는 것은 원칙의 포기라고 본다.


외교란 설계다.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싫어서가 아니라 위험해서.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제도보전주의가 한반도 지정학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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