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지지하는 사람과 일을 하지 않고도 복지는 바라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보편 복지도 지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능히 일할 수 있음에도 어떤 노력도 의지도 없이 사회가 자신을 돌봐주기를 기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분명한 판단을 내린다. 그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위 문단을 읽어보았을 때 무언가 어색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 두 입장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제도보전주의가 복지를 지지하는 이유는 평등이 그 자체로 선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이 경제적 의존 상태에 놓이면 타인 또는 국가 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노출된다는 현실 때문이다. 직장을 잃으면 고용주의 임금 협박에 굴복해야 하고, 생계가 끊기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복지는 그 종속 구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이자 자유의 물질적 조건이다. 기본소득이 협상 불가능한 항목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가 다른 방향으로도 작동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께 말하고 싶다.
비지배 자유란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공화주의 전통이 말하는 시민적 덕성과 분리될 수 없다. 한마디로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는 공동체에 이바지하려는 지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복지는 사람을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회로부터 영구히 이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구조에 의해 밀려난 사람과, 스스로 물러선 사람.
2026년 1월 기준 청년들 중 쉬었음 인구는 46만 9천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동일한 존재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오류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가운데 비자발적 쉬었음이 72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경력직 위주로 재편된 채용 구조, 신입에 닫힌 문, 수도권 주거비의 압박 등. 이들은 구조의 피해자다. 이들에 대한 지원과 제도 개선은 마땅하고 긴급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나머지 28퍼센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아니다. 비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문제는 자발적 무기력을 사회가 어떤 언어로 다루는가에 있다.
최근의 담론은 이 방향으로 흐른다. 쉬는 것은 용기다. 포기가 아니라 자기 돌봄이다. 무기력은 번아웃의 증거다. 물론 이 언어들이 구조적 피해자에게 적용될 때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쉬었음에 적용될 때, 그리고 그 상태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약자 혐오로 처리될 때, 담론은 정직하지 않게 된다.
어떤 이들은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당신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환원하고 있다."라고.
그러나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구조가 나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개인이 무너지는 것을 단순히 나태함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 반론이 완결된 논거가 되려면 하나의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구조가 나쁘면 개인에게는 아무런 역할도 없다는 것.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와 개인의 태도는 양자택일이라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환경 안에서도 버티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환경에서 포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차이를 전적으로 구조로 설명하려 들면 노력과 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해체된다. 그리고 그 해체는 복지의 철학적 기반을 오히려 약화한다. 만약 복지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라면, 일어설 의지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담론은 복지의 취지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민적 덕성이란 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이바지하려는 지향, 공동체 안에서 자립하려는 방향성. 그것이 있는 사람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려 한다. 그런데 그것이 없는 사람은 구조가 아무리 개선되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차이를 묵인하는 것은 진짜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희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복지를 지지한다. 나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사람을 사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 그러나 그 수단이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전용될 때, 복지는 자신의 의미를 잃는다.
능히 일어설 수 있는데 일어서지 않는 것을 선택으로 포장하고, 그 선택을 비판하는 것을 혐오로 처리하는 시대에 나는 불편한 말을 한다. 덕성 있는 시민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다고.